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덕연 Apr 26. 2022

프랑스 몽블랑을 달리다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 대회 UTMB 참가기



UTMB가 열리는 프랑스 샤모니(Chamonix) 마을은 제1회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곳인 만큼 동계 스포츠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연결 비행 편이 없어 다른 도시에서 버스나 기차로 이동해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대회에 참여하는 2명의 트레일 러닝팀 팀원과 응원 겸 서포트를 위해 함께해 준 다른 3명의 팀원과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버스를 이용해 프랑스 샤모니 마을에 입성하였다. 부푼 마음을 안고.






만년설로 뒤덮인 아름답고 높은 산에 둘러싸인 샤모니 마을은 평소에는 조용할 테지만, 대회 시즌만큼은 선수의 가족들과 다음 종목을 준비하는 선수들로 뒤엉켜 시끌벅적했다. 트레일 러닝 대회 또한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서 축제의 형식을 띠고 있다. 큰 마라톤 대회가 보통 대도시 한가운데에서 펼쳐지는 데 반해, 트레일 러닝은 산속 작은 마을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몰려든 트레일 러너들로 마을 전체가 들썩들썩 복작복작 활기가 넘친다. 동네 식당, 카페, 술집, 가게 어딜 가도 발 디딜 곳이 없다. 







엄청난 에너지에 마음이 들뜨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트레일 러닝은 일반 도로 마라톤과는 달리 자연환경에서 오는 변수가 절대적으로 크게 작용하는 러닝 종목인데, 첫 해외 대회인 데다 마라톤의 2배가 넘는 무려 100km의 장거리 대회였기 때문이다. 100km 대회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늘 생사(?)를 오가고 한계를 경험하는 종목이기에, 이런저런 부담감으로 마냥 마음 편히 그 분위기를 즐길 수가 없었다. 

산에서 진행되는 대회인 만큼 안전을 위해 대회 전 필수 장비를 대회장에서 미리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장비 확인, 배번호 수령 등 필요한 준비를 모두 마치고도 다시 한 번 풀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대회 전날 밤도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참여한 종목은 이탈리아의 쿠르마외르(Courmayeur)에서 시작해서 스위스의 샹팩스(Champex)를 지나, 프랑스의 샤모니에 도착하는 100km 코스로, 누적 고도가 6100m에 이른다. 일반인이 숨이 차기 시작하는 고도가 2000m부터인 것을 생각하면 고도 3000m가 넘는 가파른 산을 5개 정도를 넘어야 하는 고난도의 코스이다. 게다가 도로 마라톤처럼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펜스가 쳐 있지도 않다. 길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 또한 선수의 자질이므로 골인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UTMB의 테마곡인 ‘Conquest of Paradise’가 웅장하게 마을에 퍼졌다. 대회 전부터 관련 영상을 많이 찾아봤기에 이미 여러 번 떠올린 이미지였음에도, 세계 각국 러너들 사이에서 이 음악을 듣고 있으니 심장이 터질 것같이 뛰었다. “삐” 하는 진행자의 출발 사인에 따라 선수들과 마을을 가로질러 마을 뒷산으로 뛰어갔다. 몽블랑은 마을 뒷산도 어마어마한 경사를 자랑하는데, 시작부터 러너들의 속도가 엄청났다. ‘이 속도로 100km를 뛴다고?’ 놀라울 만큼. 산 입구에서부터는 모두 가방에 들어 있던 등산 스틱을 꺼내 타닥타닥 바닥을 짚으며 산을 올라간다. 장거리 대회에서 스틱은 필수다.





트레일 러닝 코스 중간에는 CP(Check point)라고 해서 선수의 안전을 체크하고, 선수들이 영양 보충을 하며 쉬어 갈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빈 수통을 채우고, 빵이나 스파게티 같은 식사도 할 수 있다. 너무 피곤한 경우는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각 CP 별로 통과해야 하는 제한 시간이 있어서, 늦게 도착하거나 제한 시간 이상 쉬게 되면 실격 처리가 된다. 즉, 몸 컨디션을 살피면서 전체적인 레이스 시간 배분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 인상적인 일이라면, 1CP에 도착했을 때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의 신기함이란! 정신이 없는 와중에 잠시지만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코스 자체가 높은 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어, 달리는 내내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파란 하늘, 한국의 산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산의 모양과 들판, 산 정상의 하얀 눈과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푸른 잔디와 숲이 어우러져 컴퓨터 배경화면 같은 광경이었다. 달림의 고됨을 씻어내는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감탄과 즐거움도 잠시, 레이스 초반부터 발바닥에 통증이 찾아왔다. 물집이 잡힌 듯한 느낌이었다. 레이스 중간에 멈춰 양말을 벗고 살펴볼 수 없는 노릇이라 참고 계속 나아갔는데, 점점 통증이 커지는 걸 보니 물집이 제법 커진 것 같았다. 수없이 대회를 나갔지만 한 번도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 적이 없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현지에서 구입한 양말을 제대로 세탁하지 않고 신어 발바닥과의 마찰로 물집이 생긴 것이었다. 아직 남은 거리는 80km. 이 긴 거리를 고통을 참고 달릴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고 아찔했다.







매 걸음마다 느껴지는 통증이 어쩌면 다른 부위의 고통을 잊게 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장거리 대회에서는 다양한 어려움과 직면한다. 레이스 지속 시간이 6시간이 넘게 되면, 땀의 배출이 많아 탈수 현상이 일어난다. 또한, 혈액이 근육으로 몰리게 되어 소화기관이 경직되기도 한다.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선 탄수화물과 당 등 영양 보충을 꾸준히 해 줘야 하는데, 먹으면 소화를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다시 위로 올라온다. 물만 마셔도 구토로 배출된다. 이런 식이다 보니, 해가 져 쌀쌀해진 산속에서 달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같이 달리던 팀원들은 코스를 좌우로 갈지자로 휙휙 가로지르며 비틀대고 있었다.





레이스가 11시간쯤 지났을 때, 코스의 절반 지점에 도착했다. CP에 미리 와 있던 팀원들을 만나 그동안 코스의 어려운 점을 나누고, 다음 코스에 대한 전략도 다시 세웠다. 

몽블랑 대회가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산속을 달리는 대회이다 보니 하이테크와는 어울리지 않는 ‘자연주의’ 느낌일 수 있는데, 생각보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내가 지나온 거리나 어느 CP에 몇 시에 들어갔는지 등의 정보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페이스북과 모바일 앱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나의 상태를 보고 한국과 유럽에 있는 친구들이 응원을 보내온 건 큰 힘이었다. 수천km 떨어진 곳에서 아내는 새벽 내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고, SNS에 나의 대회 근황을 올려 주었다. 





서포트 팀원이 죽, 빵, 과일 등을 차려 주었지만, 울렁거리는 속이 잘 다스려지지 않아 먹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레이스 진행이 어려울 것이므로 억지로 욱여넣어야 했다. 그렇게 재정비를 하고 다시 출발해 스위스 산 어귀 마을을 지나는데 밤늦은 시간임에도 마을 주민들이 각자의 집 앞에 테이블을 꺼내 놓고, 물과 먹을 것을 챙겨 두고 있었다.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꼬마 아이들이 음식과 물을 쉴 새 없이 집에서 내어 오는 모습은 꽤 감동적이었다. 이 대회는 대회 주최측과 달리는 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레이스가 아니었다.





‘함께’를 느끼는 순간은 또 있다. 밤의 산속은 무척 어두워서 선수들은 각각 머리에 헤드 랜턴을 차고 달리는데, 코스가 길고 사방이 탁 트여 있다 보니 저 멀리 앞서 달리는 선수들의 불빛과 뒤따라오는 선수들의 불빛이 점점이 모여 하나의 선을 이룬다. 숲속에서 불빛이 만들어 낸 선은 ‘아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다 같이 열심히 달리고 있구나’ 하는 일종의 연대감이 되어 주었고, 그 동질감은 포기하지 않도록 이끄는 힘이었다.






물론 불빛이 만들어 낸 선의 일부가 되지 못할 때도 있다. 산속의 밤은 무척 길다. 저녁 6시쯤 해가 지고 아침에 동이 틀 때까지 거의 반나절 내내 어둠이 머문다. 레이스가 지속될수록 선수 간의 앞뒤 간격이 벌어지다 보면 혼자 남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순간 하늘을 바라보았더니 하늘 가득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쏟아질 듯 많은 별들이 레이스에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달려 나갔다.





시작부터 내 몸의 한계를 시험한 몽블랑 100km 장거리 대회는 중빈에 이르자 꽉 붙잡고 있던 정신력 또한 함께 시험대에 올렸다. 물집이 잡힌 발에 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70km쯤 달려 CP에 들어갔는데, 함께 달리던 팀원 중 한 명이 포기 의사를 밝혔다. 눈앞이 아찔했다. 안 그래도 탈수 현상과 물 중독 증상(물을 필요이상으로 많이 마셔 구토, 설사, 경련 혼수등이 나타나는 증상) 소화장애에 근육 경련까지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었는데 같이 고생하던 팀원이 더 이상 못 가겠다고 하니, 나에게도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과연 끝낼 수 있을까.’ 도대체 왜 외국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는 걸까 달리면서 수백 번 생각했는데, 중도 기권을 선언하는 팀원을 보니 ‘에라 모르겠다, 포기하고 쉬자!’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여정과 함께 달리는 다른 한 명의 팀원을 생각하니 중간에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1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나서 장비를 주섬주섬 챙겨 팀원과 함께 다시 출발했다. 


잠 앞에 장사 없다고, 20시간 가까이 달리다 보니 동이 틀 무렵엔 눈꺼풀이 무거워 반쯤은 졸면서 걸었던 것 같다. 이미 목표했던 이상적인 완주 시간은 훌쩍 넘겼기 때문에, 속도를 내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완주하자’로 목표가 수정된 상태였다.





해가 뜨고 밝아지자 다시 속도가 붙었다. 남은 거리와 남은 제한 시간을 계속 확인하면서, 드디어 마지막 산을 넘었다. 마지막 10km는 내리막이었는데, 부지런히 달려가야 제한 시간에 완주가 가능한 상황이라 진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달렸다. 이미 지친 다리는 내리막길에도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고, 발바닥 전체에 퍼진 물집은 진작에 터져 피가 흥건했을 정도로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이제 완주가 코앞에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에 입성하니 수많은 응원객들이 고생했다며 박수를 쳐 주었다. 연신 하이파이브를 하며 확성기 소리와 음악 소리가 점점 커져 들려오는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 나갔다. 드디어 골인.





26시간 30분의 제한 시간에 26시간 15분의 기록으로 가까스로 완주에 성공하였다. 골인지점 앞에서 대기하던 서포터로부터 건네받은 태극기를 펄럭이며 300m 정도의 구간을 더 들어가는데, 힘들었던 순간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울컥하는 마음에 눈가가 뜨거워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어서 눈물을 애써 참았다. 선글라스가 없었으면 눈물을 참느라 일그러진 얼굴이 다 드러날 뻔했다.




점심쯤 골인을 했는데, 땀투성이, 흙투성이의 몸을 씻어 내고는 저녁까지 죽은 듯이 잤다. 말 그대로 침대와 하나가 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달고 깊은 잠이었다.나의 몽블랑 코스 완주 기록은 한국인 최연소 기록으로 남아 있다. 도전하는 사람 자체가 적어서이기도 하고, 또 언젠가는 깨질 기록이다. 사실 기록보다 내게 의미 있는 건, 내가 목표한 것을 끝내 이뤘다는 점이다. 해냈어! UTMB의 완주 경험은 ‘제2의 인생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이후의 내 달리기 커리어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뉴욕 마라톤_2015.1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