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는 분명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by 박은석


중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쑨원은 혁명가 이전에 의사였다.

그런데 서구 열강이 중국을 장악해 나가는 것을 보고 그는 무능한 청나라를 구하는 길은 혁명밖에 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에 대항하여 무장봉기를 계획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계획이 무산되자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타향에서 화교와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혁명정신을 전파하며 지냈다.

이때 그의 혁명 이념인 ‘삼민주의(三民主義)’를 발표하였다.

민족주의(民族主義), 민권주의(民權主義), 민생주의(民生主義)가 그것이다.

민족주의는 청나를 무너뜨리고 한족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것이었다.

민권주의는 군주정치를 무너뜨리고 국민의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세우자는 것이었다.

민생주의는 민중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쑨원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대수술을 하려고 하였다.




사람을 치료하는 인의(人醫)로 평생을 지내느니 나라의 환부를 도려내는 국의(國醫)를 하겠다던 쑨원이었지만 그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책 읽는 시간이었다.

쑨원이 책 읽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보낼 때 한번은 일본의 유명한 정치인인 이누카이 쓰요시가 쑨원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이누카이가 쑨원에게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쑨원은 “혁명(Revolution)!”이라고 대답했다.

이누카이는 혁명 말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쑨원은 여자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이누카이는 좋아하는 것 하나만 더 대 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쑨원은 “북!(Book)”이라고 대답했다.

쑨원의 대답을 들은 이누카이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는 없다.

그런데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책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혁명가의 길로 들어선 쑨원은 매 순간 긴장을 유지하면서 신속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쑨원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길은 독서밖에 없다며 온종일 책을 끼고 살았다.

한가할 때는 물론이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는 독서가 밥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가 유럽에 있는 화교들에게 혁명정신을 선전하다가 런던에 들렀던 때가 있었다.

당시 그의 수중에는 여비가 거의 없었기에 싸구려 빵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이런 그의 형편을 알아차린 유학생들이 쑨원에게 제대로 된 밥을 먹이자며 40파운드를 모금해서 건네주었다.

1주일 후에 유학생들이 쑨원을 방문했는데 쑨원은 여전히 싸구려 빵을 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러분 덕분에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프랭클린의 <자서전> 등을 살 수 있었어요.”라며 즐거워했다.




쑨원은 종종 “생활의 어려움은 조금도 두렵지 않다. 항상 그래왔다. 몇 끼 굶는 것은 별 게 아니지만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내게는 독서가 밥보다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해외 망명 시절에도 짐보따리 속에는 책이 있었다.

비 오는 날 우산은 챙기지 않아도 책은 놓고 나가는 법이 없었다.

전쟁터에서 작전을 지휘할 때도 한 손에는 신간 서적이 들려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요즈음 무슨 책을 보느냐고 물어보았다.

1911년 10월 그는 뉴욕의 한 시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다가 혁명군이 중국 우창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길로 곧바로 귀국했는데 그 와중에도 그의 손에는 <사회주의 개론>과 <사회주의 이론과 실행>이라는 신간 서적이 들려 있었다.

그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도 통증을 참으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이런 위대한 인물이 책을 가까이했다면 책 속에는 분명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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