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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하는 날이 아니라 누리는 날이다

by 박은석


어떤 사람들은 나를 굉장한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어쩌다가 나와 함께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 때면 괜히 바쁜 사람에게 시간을 뺏었다며 미안해한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요즘은 어떤 분야든지 간에 얼마간의 공부를 하고 자격을 갖추면 전문가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전문가가 되면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한 시간에 얼마라는 기준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예전에는 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돌보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요즘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보려면 자격증을 따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도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전문가에게 맡긴다.

과거에는 너나없이 했던 일들이 이제는 전문가가 나서야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나도 내 일에 대해서는 전문가로 불린다.

그러니 내 시간을 뺏은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가 좀 바쁘게 지내기는 한다.

잠시라도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아무 계획이 없는 시간일지라도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하나 만들어보려고 한다.

밖에 나가 산책을 하는 시간에도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책 읽어주는 서비스를 받는다.

비록 운동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뭐라도 하나 건지려고 하는 욕심 때문이다.

음악이라도 좀 들으려고 하면 음악을 배경으로 해서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면서도 그 사람에게서 무엇인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생각한다.

좋은 말이 있으면 그 말을 마음에 담았다가 다른 데서 써먹으려고 한다.

전문가는 일분일초라도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강박감 같은 것이 나에게도 있다.

이런 습관은 나에게 많은 유익을 끼쳐주었다.

하지만 문득 내가 너무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나는 과연 잘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지혜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솔로몬이 인생 노년에 지은 책이 있다.

성경에 <전도서>라는 이름으로 들어 있다.

전도서라니까 종교를 전하는 책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인생의 진리라고 할 수 있는 도(道)를 전(傳)해주는 책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솔로몬 자신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게 정말 중요하다’라고 느낀 점들을 기록한 책이다.

그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도 더한다.”라고 했다.

많이 알아서 좋을 것 같은데 많이 알면 많이 알수록 그만큼 고민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흔히 공부와 담을 쌓은 아이들이 하는 말처럼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과 통한다.

한 가지를 알게 되면 두 가지를 알고 싶고 두 가지를 알게 되면 열 가지를 알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렇게 알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고 그렇게 알기 위해서 부지런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로마의 정치인이자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죽을 때까지 분주한 것이 무엇이 부럽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갔는데 풍랑에 휩싸였다고 생각해 보자.

빨리 배를 움직이려고 뱃사공들이 힘껏 노를 저었다.

바쁘게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그들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노를 저으면 저을수록 배가 육지와 더 멀어졌다면 그게 잘한 일인가?

배에서 노를 젓는 뱃사공들은 물론 전문가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말만 믿었다가, 전문가의 모습만 믿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천천히 가더라도, 좀 돌아서 가더라도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는 게 훌륭한 항해이다.

좀 모르더라도, 지식이 짧더라도, 얻은 것이 얼마 안 되더라도 즐겁게 사는 게 훌륭한 삶이다.

오늘은 무엇인가 꼭 얻으리라는 강박감을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 대신에 오늘에만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려봐야겠다.

오늘은 일하는 날이 아니라 누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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