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시작한 1년 200권 읽기 운동은 나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지식이 많이 쌓였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려 보면 영어 단어를 암기하기 위해서 연습장에서 열 번 스무 번 쓰면서 외웠다.
16절지 누런 종이 8장에 앞뒤로 빽빽하게 수학문제를 풀다 보면 모나미 153볼펜의 잉크가 똑 떨어졌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그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기도 했다.
조금 더 알기 위해서 조금 더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볼펜과 연습장을 소모했다.
그런데 지난 15년 동안 책읽기 운동을 하면서는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책 한 권에서 한 줄의 문장만 건져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성공한 책읽기는 책에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많이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읽기에 어떤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았다.
나의 책읽기는 무조건 많이 읽는 게 목적이었다.
책읽기의 목적이 그냥 읽는 것뿐이었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 기억에 남는 내용은 별로 없었다.
어떤 때는 이미 읽은 책인데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읽었던 적도 있다.
책 제목은 떠오르는데 저자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는 부지기수였다.
나의 책읽기가 잘못된 책읽기는 아닌지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올바른 독서법 같은 지도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많이 게을렀다.
책 읽는 것만으로도 내 생활이 벅찼다.
거기에 더해서 독서모임 같은 데에 참가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는 일은 나에게 너무 무리한 일이었다.
책읽기 운동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자랑할 생각도 없었고, 어느 모임에 가서 강연할 생각도 없었다.
책읽기에 대한 글을 책으로 엮을 생각을 한 적도 없다.
그냥 나 혼자만의 책읽기였기에 아무런 계획이나 목표도 없었다.
그런데 책읽기 운동이 10년을 넘어가고 15년에 이르다 보니까 나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이야기에 들어가는 내용들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내 전공과목과 전혀 상관이 없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어디선가 그 분야에 관련된 정보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전문 지식과 용어들이 거론될 때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어휘라는 생각이 든다.
내 전공과목은 대학에서는 한국어교육이고 대학원에서는 신학이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전공과목이 어떤 때는 문학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역사나 철학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미술이나 음악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 많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깜짝 놀란다.
그 분야들에 대해서 특별히 시간을 내서 공부한 것도 아닌데 꽤 많이 알게 되었다.
지식은 단기간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서 획득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처럼 긴 시간 동안 조금씩 쌓여가기도 한다.
서론 본론 결론, 기승전결의 순서대로 외워서 지식을 쌓기도 하지만 여기서 한 줄, 저기서 한 줄을 가지고 와서 얼기설기 엮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나의 책읽기 운동은 후자의 방법으로 나에게 지식을 쌓게 해주었다.
요즘은 강의를 할 때나 사람들을 만나서 좀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내 입에서 이런저런 지식과 정보들이 쏟아져나온다.
내가 언제 이런 지식과 정보를 알게 되었는지 나 자신도 신기해하며 의아해한다.
특별히 시간을 내서 공부한 것은 아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한 장 한 장 책을 읽다 보니까 한 줄 한 줄 지식이 쌓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쌓인 지식들이 어느 순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책읽기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지식을 쌓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