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는 농사짓는 사람이었다

성경이야기 1

by 박은석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도 내가 전공한 성경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인물에 대한 언급이나 좀 했을 뿐이다.

그런데 성경 이야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 재미있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목사님이 들려주는 설교가 아니라 인문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성경을 보면 그동안 듣지 못했고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인문학적인 방법이라는 게 다른 것이 아니다.

역사와 문학과 철학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수는 2천 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2장 7절에는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 ‘강보’는 우리 식으로 보면 배냇저고리인데 그 천이 어떤 천이었을까?

지금처럼 촘촘하고 부드러운 천이었을까?

2천 년 전 이스라엘의 직조기술을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 인문학적 접근이다.




인문학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어보려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졌던 마음이다.

그런데 성경 이야기를 글로 쓴다고 하면 독자들이 또 한 편의 설교를 듣는 것처럼 여길 것 같아 지금까지 주저해 왔다.

그런데 언젠가는 한번 써야 할 이야기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내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쌓아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쌓아둔 것을 내보내야 또 다른 것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매주 일요일에는 성경 이야기를 한 편씩 쓰기로 했다.

일요일이니까 성경 이야기를 쓰기에 딱 좋은 날인 것 같다.

16년 차에 접어든 1년 200권 책읽기 운동이 나에게 상상력의 깊이를 더해 주었고 인문학적 사고를 크게 키워주었다.

내가 쓰는 성경 이야기를 읽고 재밌어할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진다.

충격을 받는 모습도 그려진다.

그러면서 성경을 알아가는 거다.

그럼 이제 시작이다.




성경은 한 권 같지만 모두 66권이 모인 전집이다.

그래서 흔히 ‘성경전서’라고 한다.

성경은 구양성경과 신약성경으로 크게 둘로 나뉘어 있다.

구약은 오래된 약속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라는 말뜻을 지닌다.

그러니까 성경은 약속의 책이다.

그건 그렇고 구약성경은 창세기라는 책으로부터 시작한다.

세상을 창조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첫째 날은 빛을, 둘째 날은 궁창을, 셋째 날은 땅과 바다와 각종 식물을, 넷째 날은 해와 달과 별을, 다섯째 날은 물고기와 새들을, 여섯째 날은 땅 위의 동물들과 사람, 즉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

이때 하루 이틀 사흘이라고 기록된 날들을 오늘날의 하루 24시간으로 생각하면 성경 첫 페이지부터 혼란스러워진다.

이 시간들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시간이다.

이 시간 개념은 너무 복잡하니까 그냥 넘어가자.




우주만물이 창조된 후 맨 나중에 사람이 창조되었는데 창세기 1장 끝에는 재밌는 표현이 나온다.

27절에서 31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너무 신학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표현이다.

이런 것들도 넘어가자.

내가 재밌어하는 표현은 29절이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아담과 하와)에게 먹거리를 주셨는데 그것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이다.

즉, 성경에 의하면 인류의 첫 조상들은 채식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요즘 비건 식사를 하는 이들은 적어도 먹거리에서만큼이라도 인류의 첫 조상을 찾아가는 것이다.

채식 식사는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식단이다.

학교에서는 인류의 첫 조상들이 수렵, 채집을 하다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신석기혁명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성경은 처음부터 인류는 농사를 지었다고 말한다.

창세기 2장 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인류의 첫 조상 아담은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냈다.




다시 창세기 1장 30절에 보면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들의 먹거리도 ‘푸른 풀’이었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겠지만 성경대로라면 에덴동산에 있었던 호랑이도, 사자도, 표범도 모두 풀을 뜯어먹었다.

호랑이가 어떻게 풀을 뜯어먹겠냐고 하겠지만 백두산 호랑이도 가끔씩 풀을 뜯어먹는다.

EBS 다큐멘터리PD인 박수용 씨가 쓴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과 다큐멘터리를 보면 풀 뜯어먹는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상상이 되는가?

호랑이와 사자가 풀을 뜯어먹는다니! 그곳이 바로 에덴동산이고 낙원이다.

성경은 이후에도 이사야 11장 7절에서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라고 했고 이사야 65장 25절에서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비유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에덴동산을 떠난 우리는 항상 에덴동산을 동경한다.

그곳을 낙원이라고도 하고 천국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꿈꾸는 그곳은 사자나 호랑이와 함께 노닐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고기를 먹었을까?

창세기 9장을 보면 하나님은 노아에게 창세기 1장과 같은 축복을 베푸신다.

그리고 9장 3절과 4절을 보면.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이제 비로소 퍼즐의 한 조각이 맞춰진 것 같다.

성경의 이야기대로라면 인류와 모든 짐승들은 애초에 초식을 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은 후에 사자나 호랑이 같은 동물들은 육식동물로 변했고 사람도 채식 이외에 육식을 하게 되었다.

단지 한 가지 예외 규정을 두셨는데 그것은 고기를 먹되 피째로 먹치는 말라는 것이었다.

한때 몸에 좋다며 사슴 피를 먹곤 했었던 우리 조상들은 큰일을 저지른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이처럼 먹지 말라는 내용이 종종 나오는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 규정들도 사라진다.




성경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한 줄의 문장을 통해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매일 뭘 하면서 지냈을까?

에덴동산에서는 벌거벗고 지내도 부끄럽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3가지 조건인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옷(의, 衣)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집(주, 宙)은 뭐 아무 데서나 잘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해결되었다.

그럼 한 가지가 남았다.

먹거리(식, 食)는 어떻게 충당했을까?

성경대로라면 아담과 하와는 채소를 먹고 과일을 먹고 곡식을 먹었을 것이다.

창세기 2장 15절에 언급된 것처럼 그들은 에덴동산을 경작(耕作)하는 사람이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로 발전하는 인류 문명 발달사가 성경에는 곧이곧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경에서 최초의 인간은 농사짓는 인간이었다.

성경이야기 1 - 아담과 하와는 농사짓는 사람이었다001.jpg
성경이야기 1 - 아담과 하와는 농사짓는 사람이었다002.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