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한계점이라고? 그 한계는 누가 정하는가?

by 박은석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감정선이 밑바닥으로 내려간다.

무기력증이 온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뭘 해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지낸다.

여기에도 발을 못 붙이고 저기에도 발을 못 붙인다.

시시각각 숨통을 죄어오는 것들이 있다.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자니 죽음의 바다가 도사리고 있다.

그 바다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무모하게 길을 나서서 객사하는 것보다 죽더라도 그냥 여기서 죽는 것이 낫다고 한다.

주저앉아 하늘을 노려본다.

살아 계시다면 어디 한번 말 좀 해 보라고 외쳐보기도 한다.

팔자를 탓하고 조상을 탓하고 운명을 저주한다.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중에는 기왕 죽을 거면 큰 사고라도 한번 치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기보다 죽음을 향해 떠난다.




1400년대의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그랬다.

유럽의 끝에 있는 자그마한 나라.

주변에 있는 큰 나라들로부터도 시달렸지만 멀리 있었던 이슬람 나라로부터도 시달렸던 나라였다.

앞으로 나가려는데 큰 나라들이 문을 꽉 지키고 있었다.

뒤에는 큰 바다가 있다.

유일한 탈출구이다.

하지만 그 탈출구를 통해서 나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니, 정말로 돌아오지 못한 게 아니라 돌아오지 못했다는 말들이 들렸다.

그 바다로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지옥의 뜨거운 불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배를 타고 나가면 바닷물이 점점 뜨거워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 바다를 죽음의 바다라고 불렀다.

아무도 그 바다를 지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은 세상의 끝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끝은 바다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잃은 사람들, 그들은 누구나 다 세상의 끝에 서 있었다.




기왕 죽을 거면 나가서 죽자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의 끝, 지옥의 시작을 향해 돌진했다.

어차피 죽는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없었냐고?

무척 두려웠다.

그들 앞에 놓인 바다는 연초록색 빛깔을 띠지 않았다.

검푸렀다.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뜨거운 바다였다.

정말 지옥의 유황불이 저 밑에서 타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쯤 끝에 도달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였다.

출발할 때는 이 정도의 위치가 수평선으로 보였는데 수평선이 저 멀리로 이동해 있었다.

세상의 끝인 줄 알았던 그곳이 끝이 아니었다.

세상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기왕에 끝을 찾아 나온 길이니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뜨거운 바닷속으로 나아갔다.

점점 더 뜨거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뜨거웠던 바다가 서서히 차가워졌다.

유황불이 활활 타오르는 그런 바다는 없었던 것이다.




1434년 포르투갈의 질 이아네스(Gil Eanes)가 죽음의 바다로 배를 몰았다.

그의 선택은 자기가 죽든지 아니면 죽음의 바다를 죽이든지 둘 중 하나였다.

하루를 항해하면 하루만큼의 바다를 정복하게 되는 셈이다.

그만큼 죽음의 바다를 죽일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보자도르곶이 눈앞에 보였다.

두려움이 최고조에 다다랐다.

저기가 세상의 끝이고 죽음의 출입구이며 죽음의 장소라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보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음의 바다라고 불리던 곳도 그냥 바다였을 뿐이다.

물이 조금 따뜻한 바다였을 뿐이다.

세상의 끝이라는 그 한계는 누가 정하는가?

그 끝이라는 지점은 어디인가?

이아네스가 보자도르곶을 지나는 순간 세상의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 한복판에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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