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그르니에의 <카뮈를 추억하며>를 읽고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교를 졸업한 장 그르니에(Jean Grenier)라는 선생이 있었다.
명문대학을 졸업했으니까 좋은 대학의 교수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에게 행운이 빗나가는 것만 같았다.
철학교수 타이틀을 얻었지만 그를 불러주는 대학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당시 프랑스가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알제리의 한 고등학교 철학교사의 자리를 얻게 되었다.
남들이 봤을 때는 청춘의 꿈이 그렇게 허물어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꾸준히 이어갔다.
언젠가 인생의 기회가 다시 올 것이라는 기대를 잃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며 좋은 책을 소개해 주기도 하였고 글을 써보라고 권면하기도 하였다.
학생들 중에는 그르니에 선생의 글을 읽고 그 글을 따라서 글쓰기 연습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르니에 선생의 반에 오랫동안 결석을 하고 있던 학생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이런 특이한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곤 하였다.
그르니에 선생도 장기결석 중인 학생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 학생과 친한 아이를 한 명 데리고 택시를 타고 학생의 집을 찾아갔다.
도시의 끝에 있는 초라한 집이었다.
학생은 축구를 하다가 다친 상태였다.
가난한 살림이었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왔다.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 축구선수가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무릎을 다쳐서 축구를 할 수도 없었다.
학교에 갈 이유도 없었고 공부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선생님은 학생에게 몸은 좀 괜찮냐며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학생은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대화는 짧게 짧게 끝났다.
하지만 학생의 말에는 무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자신이 처한 사회에 대한 적개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가정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선생님에게 학생이 물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범죄자가 될 것 같은데 범죄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르니에 선생이 학생에게 대답했다.
책을 읽고 글을 써보라고.
그 말을 듣고 이 학생도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글을 좀 쓰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선생님의 글들도 탐독했다.
선생님은 무섭게 책을 읽고 창작열을 올리는 이 학생에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면하기도 하였다.
학생은 그 책을 읽고 최고의 찬사를 늘어놓았다.
열일곱 살의 학생은 서른두 살의 선생님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고 나중에 소설가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그르니에 선생님도 무서운 정열을 가지고 살아가는 제자 못지않게 치열하게 살았다.
그는 나중에 소르본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1930년 알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그르니에 선생님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 학생은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였다.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의 신화>, <반항하는 인간>, <최초의 인간> 등 현대문학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긴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카뮈는 마흔여섯 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무려 30년이나 자신의 스승인 그르니에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분을 나눴다고 한다.
어쩌면 1930년의 알제는 그르니에 선생님에게나 카뮈에게나 세상의 밑바닥이었을 것이다.
막막하고 탈출구도 없는 식민지의 가난한 뒷골목이었을 것이다.
남의 등이나 쳐 먹는 범죄자가 되기에 딱 맞는 환경이었다.
“범죄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열일곱 카뮈가 물었다.
“책을 읽고 글을 써보렴.”
서른둘의 그르니에 선생님이 대답했다.
짧은 만남 짧은 대화였지만 위대한 만남이었고 위대한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