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4월 14일 미국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총탄에 맞았다.
참모진들이 급하게 링컨을 근처의 숙소로 옮겼다.
하지만 회복이 불가한 상태였다.
죽어가는 링컨을 보면서 육군장관 스탠튼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인간을 다스렸던 사람이 저기 누워 있다.”
링컨은 도대체 어떻게 사람을 대했길래 가장 완벽하게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10년 동안 링컨의 삶을 꼼꼼하게 연구한 데일 카네기가 <인간관계론>에서 그 비결을 파헤쳤다.
젊은 시절의 링컨은 남들처럼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을 좋아했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을 조롱하는 편지나 시를 써서 그 사람이 발견할 만한 곳에 떨어뜨려 놓곤 했다.
일리노이주에서 변호사가 된 다음에도 그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공개편지를 써서 신문에 내는 식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렇게 썼던 편지 중 한 통이 링컨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1842년 가을 링컨은 제임스 쉴스(James Shields)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인과 충돌했다.
그때 링컨은 <스프링필드 저널>에 익명의 편지를 기고해서 그를 비웃고 놀려댔다.
예민하고 자존심 강한 사람이었던 쉴스는 분노했다.
그는 누가 편지를 썼는지 알아내자마자 링컨을 찾아가 결투를 신청했다.
링컨은 결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결투를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링컨에게 무기 선택권이 주어졌다.
링컨은 팔이 긴 사람이었기 때문에 날이 넓은 칼을 택하였다.
그리고 육군사관학교 졸업생에게 칼싸움을 배웠다.
정해진 날이 되어 링컨과 쉴스는 미시시피강 모래사장에서 마주했다.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싸울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결투의 입회인들이 간곡한 말로 두 사람을 타일러서 결투를 중단시켰다.
이 일련의 사건은 링컨의 삶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링컨은 인간관계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다시는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는 다른 사람을 조롱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남북전쟁 중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장군들에게 새로운 보직을 주어야 할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 장군들의 실책을 거론하면서 비판을 가했는데 링컨은 그때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했다고 한다.
북부 사람들이 남부 사람들을 향해서 험한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지만 링컨은 말을 삼갔다.
심지어 자신의 부인이 남부 사람들에 대해 심한 말을 할 때도 “그들을 비난하지 마시오.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우리도 그랬을 것이오.”라는 말로 응수했다.
사람을 대할 때 그가 가장 사용하는 말은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성경구절이었다고 한다.
스탠튼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인간을 다스렸던 사람, 인간관계를 가장 잘 유지했던 사람으로 링컨을 꼽았다.
그가 본 링컨의 모습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는 모습이었다.
나도 그 사람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게 말은 쉬운데 막상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나는 되는데 저 사람은 왜 안 될까?’라는 생각이 먼저 고개를 든다.
이건 책을 많이 읽어서 기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을 만나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훈련을 통해서 길러내야 하는 것이다.
링컨도 처음부터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 결투 사건 이후에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훈련했기에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인간관계에도 훈련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