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집값에 대한 뉴스가 들린다.
가격이 오르네 내리네 호들갑을 떤다.
아무리 넓은 집이라고 하더라도 가족 수로 그 평수를 나누면 1인당 10평 안팎이다.
사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고작 100㎡도 안 된다.
그에 비하면 시베리아 호랑이는 사람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박수용 감독의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의 기록을 토대로 계산해 보면 암호랑이의 영역은 500㎢ 정도이고 수호랑이는 암호랑이보다 많게는 4배나 넓은 2,000㎢의 땅을 차지한다.
대한민국의 전체 면적이 대략 100,000㎢이니까 수호랑이 50마리가 차지하는 넓이이다.
호랑이 50마리가 살 수 있는 땅에 5천만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김이 빠지는 것 같다.
나는 호랑이가 차지한 땅보다도 훨씬 좁은 땅에 살고 있다.
집에 마당이 있고 텃밭이 있었던 어린 시절에는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이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내 고향 동네인 제주도 제주시 봉개동으로 이사를 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넓은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좁디좁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를 쉽사리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십중팔구, 백중구십구 명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사람으로 복잡거리는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최성원이란 가수가 노래했다.
하지만 그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도 그 노래를 듣고 제주도로 갔던 사람들도 대부분 사람들이 많은 도시로 돌아왔다.
왜 그랬을까?
조용한 곳에서 넓은 땅을 차지하면서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산길을 헤치며 산나물을 뜯고 버섯을 캐면서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게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산에 잠깐 갔다가 다시 사람들 속으로 돌아온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 약하다.
야생의 짐승들과 싸워서 이겨낼 수가 없다.
혼자서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짓기도 힘들다.
혼자서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기도 힘들다.
혼자서는 변화무쌍한 자연의 변화에 대응할 수가 없다.
머리에 뿔이 있으면 들이받기라도 할 텐데 그러지도 못한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있으면 맹수와의 싸움도 해 볼 만한데 사람에게는 그런 것도 없다.
폭신한 털이 있으면 추위를 견딜 수 있는데 사람이 터럭으로는 몸을 따뜻하게 할 수가 없다.
혼자서는 추운 날씨를 견딜 재간이 없다.
결국 사람이 택한 방법은 둘이서 셋이서 함께 있는 거였다.
외줄은 쉽게 끊어지지만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줄이 많으면 무거운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다리도 거뜬히 들어 올린다.
미국의 금문교가 그 증거이다.
약하디약한 사람에게도 재능이 있었다.
사람들끼리 서로 만나는 것이었다.
만나서 말을 하다 보니 꾀가 생겼다.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하니까 여럿이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일대일로 싸우면 질 것 같으니까 여럿이 힘을 합한 것이다.
여럿이 뭉치니까 맹수와 싸워서 이길 수도 있었고 먹거리를 구하기도 수월했고 농사짓기도 쉬워졌다.
여럿이 생각하고 말을 하니까 다양한 방법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얻은 집단지성으로 사람들은 위대한 문명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모이게 되었다.
그렇게 모여서 도시를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사람은 도시로 가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도시 하나 무너지면 사람이 다 무너지고 도시 하나 병이 들면 사람들이 다 병이 들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모여 사는 게 좋은지 흩어져 사는 게 좋은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