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 그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른다. 한동안 시인 고은 선생이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언급되었지만 스웨덴 한림원은 선생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고은 선생의 개인적인 일탈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사회는 그런 문제에 민감하다. 나도 고은 선생의 시집을 손에 들었다가 내려놓곤 했다. 아무리 좋은 시를 쓴다고 하더라도 시인의 삶이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지 못한다면 그의 시는 시 나부랭이가 되고 만다. 고은 선생에 대한 기대가 가라앉은 시점에서 노벨문학상은 우리에게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우리 문학이 노벨상 후보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를 마땅한 번역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변명으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한국어를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벼락처럼 속보가 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인터넷 뉴스를 확인한 시간이 10월 10일 밤 10시 정도였다. 한강 작가에 대한 소문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책이라곤 <희랍어 시간> 한 권뿐이었다. 그것도 무슨 내용인지 몰라서 두 번씩이나 읽었다. 내 오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젊은 작가들의 책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 적어도 나보다는 나이가 많아야 인생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약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나에게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과 함께 그녀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당장 인터넷 서점을 뒤졌다. 한강 작품이 대여섯 편 있었다. 밀리의 서재에도 있나 봤더니 없었다. 지역 전자도서관에도 한강 작품은 거의 없었다.
일단 닥치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한강 작품을 구입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의 책들도 구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흰>, <검은 사슴> 등의 한강 작품을 읽었다.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 <보리 닷 되>, <산돌 키우기> 등 한승원 선생의 책을 읽었다. 방송에서는 연일 한강 작가 덕분에 출판업계에 난리가 났다는 뉴스가 나온다. 한강의 작품을 구하려고 오픈런 사태가 일어난 서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강 덕분에 아버지인 한승원 선생의 책들도 많이 팔린다고 한다. 한강 신드롬이라고 할만하다. 오픈런을 하지 않았지만, 서점에 가서 책을 사지 않았지만 나도 분명 한강 신드롬에 일조한 사람이다. 이 짧은 기간에 한강과 그의 아버지의 책을 걸신들린 듯이 탐독하고 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현상을 비판적으로 본다. 노벨문학상을 받는다고 하니까 무조건 책을 산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하루 한 페이지도 읽지 않으면서 괜히 난리를 친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얼마나 많이 읽느냐고. 당신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사고 싶게 했고 읽고 싶게 했냐고. 어떤 사람은 한강의 책을 이념 논쟁의 도구로 바라본다. 제주 4.3과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한쪽 면에서만 본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다. 한강 작가의 책을 제대로 읽어 봤냐고? 제대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신드롬이어도 좋다. 비판적인 시각이어도 좋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한강의 책을 읽어본다면 읽은 만큼 이익일 것이다. 다를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책을 읽는 것이 안 읽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이 분위기가 좋다. 전 국민이 책 읽기에 빠진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