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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21. 2024

수다가 가장 큰 일이다

   

오십 대의 나이가 되니까 자연스레 이제 내가 일할 수 있는 연수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오십 대 후반이면 정년을 맞이하여 퇴직하기 시작한다.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하더라도 60대 초중반이면 은퇴를 한다.

은퇴 후에는 한동안 일이 없이 지낸다.

은퇴하고 좀 쉬겠다는 이들도 막상 은퇴를 하면 불안증에 직면하고 답답증에 괴로워한다.

중년의 여성들이 갱년기를 맞이하듯이 은퇴를 전후한 남성들도 갱년기를 맞는다.

일명 남성 갱년기이다.

일류 기업의 잘 나가는 직급이었다고 하더라도 은퇴 후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을 할 수도 있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기술이 없는 사람은 그 나이에 기술학원에도 다니고 자격증 시험도 치른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일자리를 얻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일을 내려놓고 좀 쉬면 어떠냐고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일을 내려놓고 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논리가 통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일하지 않으면 소득이 생기지 않고 소득이 생기지 않으면 먹고 살아갈 수가 없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불과 200년 전만 하더라도 양반집 자제들은 일하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지체 높은 양반들은 땀을 흘리는 것조차 천하게 여겼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은 아랫사람이나 하는 일이었다.

양반들은 공자 왈 맹자 왈 하면서 학문하는 것을 낙으로 여겼다.

오늘날에는 학문하는 것을 지적노동이라고도 하고 지식노동이라고도 하지만 예전에는 그것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은 천한 사람이고 일 안 하는 사람은 귀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 조상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이런 생각이 지배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어떤 나라가 가장 이상적인 나라냐는 질문에 철학하는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철인정치(哲人政治)를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듯이 당시 그리스 문명권에서의 노동은 노예들이 하는 일이었다.

농사를 짓고 물을 긷고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는 허드렛일들은 노예들에게 시키면 되었다.

시민권자들은 그런 허드렛일에서 해방되었다.

그런데 하루 스물네 시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보낼 수는 없다.

시민권자들에게 뭔가 일거리가 필요했다.

시민권자들은 그 일거리를 찾아냈다.

그 일이란 게 바로 ‘철학’이다.

고상하게 표현해서 ‘철학’이라고 하지 사실은 수다 떠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신변잡기에 대한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무심코 요즘 자신을 괴롭히는 고민거리들을 털어놓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마 죽고싶다는 말을 곁들였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함께 수다를 떨던 사람이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아마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해. 희망을 가져.”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그 말들이 바로 철학이다.

철학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철학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다.

그런데 연약한 사람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다 보니까 지식이 전달되고 정보가 공유되면서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수다 때문에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히브리대학의 유발 하라리 교수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같은 경쟁자를 물리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수다를 꼽았다.

소크라테스는 수다를 주고받는 방법을 발전시켜서 ‘대화법’과 ‘산파술’ 같은 기술들을 개발하였다.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고민이 된다면 옆사람과 수다를 떨어 보아라.

수다가 가장 큰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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