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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

by 박은석


마음이 무거울 때

현실의 버거울 때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을 때

그럴 때

읊조리는 시가 있다.

구상 선생님의 <꽃자리>라는 시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로 시작하는 시다.


누구나 꽃이 되고 싶어 한다.

누구나 꽃길을 걸어가고 싶어 한다.

누구나 꽃들 속에 파묻히고 싶어 한다.

누구나 꽃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


그런데 왜 내 자리는 가시방석이냐고 한다.

잘 몰라서 그러는 거다.


가시는 꽃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아무나 따 가지 못하게 하려고

아무나 그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려고

가시가 꽃 아래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가시방석 그 자리가 가장 예쁜 꽃이 피는 자리이다.


가시만 보느라 꽃을 못 보는 것은 아닐까?

가시가 무서워서 꽃자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미 꽃자리에 앉아 있다고 내 엉덩짝에 있는 꽃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앉았던 자리를 돌아본 적이 있는가?

그 자리에 꽃이 피어 있지는 않았던가?

그 자리를 생각하면 흐믓하지 않았던가?

그 자리가 꽃자리이였던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는가?


지금 이곳, 내가 앉아 있는 자리

조금은 불편하고 따가운 자리가

바로 꽃자리이다.




<꽃자리>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
너는 네가 만들 쇠사슬에 매여 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 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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