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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14. 2020

남한산성 가면 속에서 눈물이 난다


내가 살고 있는 성남시는 이전에는 경기도 광주군에 속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 지역에 인구 유입이 많아지자 1973년 7월 1일에 남한산성의 남쪽이라는 이름을 따서 ‘성남시(城南市)’로 분할되었다.

이름에서 보듯이 남한산성이 이 지역에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해발고도 평균 480m에 그 둘레만 해도 12Km에 이르는 남한산성은 성곽의 빼어난 경관과 함께 성곽의 독창적이고도 수려한 모양으로 인해서 일찌감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보통 등산객들은 산성로터리 근처의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남문인 지화문을 지나 수어장대와 서문을 거쳐 북문으로 내려오는 대략 1시간 30분 정도의 산책길을 걷는다.

그러나 성곽을 따라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을 빙 돌아가는 코스로 해서 걷는다면 족히 네 시간은 걸린다.




이렇게 성곽을 따라 걷는 순성(巡城)놀음도 좋지만 성남시의 끝자락에 있는 분당구 구미동 무지개마을 12단지 옆에 있는 불곡산 자락을 시작으로 해서 남한산성을 찾아가는 코스로 걸어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고만고만한 산길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서 불곡산, 태재고개, 영장산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7시간을 걸어서 이제 좀 지루하다 싶을 정도가 되면 남한산성 남문이 반갑게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난다.


남한산성은 성곽과 어우러진 자연환경도 좋지만 그 안에 자리한 건물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임금님이 이동 중에 거처하는 궁궐인 행궁, 군인들을 훈련시켰던 연무관, 인조 임금이 직접 올라서 군사들을 통솔했다고 하는 수어장대, 그리고 남한산성의 정문인 남문(지화문)은 꼭 둘러보아야 할 필수 코스이다.




그런데 봄여름가을겨울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즐기고 가지만 나는 남한산성에 갈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 밀려오는 아픔을 느낀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하지만 임진왜란의 충격을 겪은 후 다시 외적의 침입이 있으면 재빨리 피하려고 인조 임금 때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쌓았다.

그러나 정작 병자호란이 났을 때는 고작 45일을 버티다가 끝내 항복을 해야만 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은 <남한산성>이란 소설을 통해서 당시 신하들 중에서 청나라에 화친해야 한다는 측과 결사항쟁을 해야 한다는 측이 팽팽히 대립되어 있었던 사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였다.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했던 임금과 명분과 자존심만 내세우는 신하들 틈바구니에서 힘없는 백성들만 죽어나갔다.




남한산성의 정문인 남문에는 ‘지화문(至和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지극히 평화로운 문’이란다.

이 문으로 성 안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인조 임금은 평화로운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네 개의 문 중에서 제일 작고 초라한 서문으로 성을 나서서 청나라에 항복하러 갈 때는 너무 비참했을 것이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없으니 걸어서 지나가야 했고, 왕의 옷을 입지 말라고 했으니 신하의 옷을 입어야 했다.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에서 피가 나도록 땅에 찧어가면서 잘못했다고 조아린 임금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하들과 백성들의 가슴은 걸레조각처럼 갈가리 찢겼을 것이다.

남한산성도 무척 아팠을 것이다.

청나라에 사죄한다며 50만 명을 뽑아 바칠 때 힘없는 백성들의 통곡과 울부짖음을 남한산성은 다 보고 듣고 있었을 것이다.




성곽으로 쌓은 돌들을 쳐다보고 만져보았다.

머리통만 한 크기의 돌도 있었지만 길이가 1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돌들도 꽤 있었다.

이 돌들은 어디서부터 누가 옮겨왔을까? 양반들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힘없는 백성들이 저 산 아래에서부터 지게에다가 돌을 짊어지고 올라왔을 것이다.

등산화를 신고 올라와도 30분은 걸리는 그 길을 짚신 신고 올라왔을 것이다.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돌에 깔려 죽은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그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렇다.

남한산성은 처음부터 눈물이었다.

눈물로 지어졌고 눈물로 지키려고 항전했고 눈물을 흘리며 빼앗긴 성이다.


정말 다행이다.

만약 내가 400년 전에 이곳에서 살았다면 나도 지게에 돌을 얹어서 산길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아 읊조린다.




“성을 쌓은 자들의 눈물,

성을 지킨 자들의 눈물,

성을 빼앗긴 자들의 눈물,

성에서 끌려간 자들의 눈물.

눈물. 눈물. 눈물....

남! 한! 산! 성!”


남한산성에 가면 속에서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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