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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02. 2021

아직도 설날을 구정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달력을 보니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설날이 다가오면 아직도 설레는 마음이 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리의 명절이어서 그런지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설날에 입을 새 옷은 사 주시려나?

떡국은 몇 그릇을 먹을까?

세뱃돈은 얼마나 될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이웃집에서 전을 붙이는지 산적을 만드는지 고소한 참기름, 들기름 냄새가 담장을 넘어왔다.

오랜만에 가마솥에선 하얀 쌀밥이 기지개를 켰고 만두를 빚으랴 떡을 빚으랴 부엌은 부산하기만 했다.

동네 이발소에는 앉을자리가 없을 만큼 손님들이 들어차서 내 순서가 돌아오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다.

목욕탕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가서 때를 불리고 이태리타월로 박박 문지르고 나오면 꾀죄죄했던 얼굴이 뽀얗게 탈바꿈을 했다.

섣달그믐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말에 기를 쓰고 견디다가 한밤중에 잠이 들곤 했다.




세배는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세배를 다녔고 또 집으로 세배 오는 이들이 있었다.

달력의 빨간 날 표시는 이미 끝이 나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설날이 진행 중이었다.

정월대보름이 지나서야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한때는 설날도 빨간 날이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봄방학 기간이 겹치면 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학교에 가야 했다.

나라의 높은 분들이 설날은 양력 1월 1일이라고 했고 우리의 설날에는 따로 모이지 못하게 했다.

음력으로 명절을 쇠는 것은 국제사회에 뒤떨어지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나.

집안어른들은 동사무소 직원들 몰래 설을 쇠다가 무슨 해코지라도 당할까 두려워서 양력 1월 1일에 설을 대신하기로 했다.

그런데 영 설 명절 기분이 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명절은 피에서 피로 전해진 날인데 기념일 하나 정하듯이 바꾼다고 해서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 부르고 2일과 3일까지 빨간 날로 정했다고 해서 그날이 명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설날을 구정(舊正)이라고 칭하면서 마치 구정물 냄새나는 것처럼 고리타분한 날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그날이 우리의 명절이었다.


알고보니 신정과 구정을 구분한 것조차 일본놈들의 못된 짓거리였다.

우리는 1895년에 갑작스레 그동안 사용하던 음력을 버리고 양력 달력을 사용하게 되었다.

일찍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태양력에 익숙했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강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세시풍속까지 건들기에는 역부족이어서 괜한 트집만 잡곤 하였다.


그러다가 3.1만세운동이 일어나니 덜컥 겁이 난 일제는 우리 민족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교활한 그놈들은 우리가 모일 수 있는 모든 모임을 막아버렸다.

설날도, 대보름도, 결혼식도, 장례식도.

심지어는 오일장까지 통제했다.




일제에 의해 우리의 설날은 구정(舊正)이라고 부르도록 강요되었다.

음력은 구시대의 산물이고 그런 낡은 것을 명절로 지키니까 조선이 미개한 나라가 된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못된 놈들!


잘못된 교육과 습관이 얼마나 질겼던지 해방 후에도 우리는 설날을 설날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구정이라고 했다.

나중에는 생뚱맞게 ‘민속의 날’이라고도 불렀다.

내 어린 마음에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핏속에 설날은 여전히 설날이었다.

수많은 목소리가 모아져서 이름을 빼앗긴 지 근 80년 만인 1989년에 음력 1월 1일이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구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피가 끓는다.

왜 설날을 설날이라고 부르지 못하는가?

제발 그 쓰잘데없는 구정은 집어치우고 설날로 돌아오라!

더 이상 내 앞에서 구정이라는 말을 꺼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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