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by 박은석


한 해의 끝자락에 왔다.

스물네 시간만 지나면 2025년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넘어가고 2026년의 한 해가 시작된다.

아잇적에는 한 살이라도 더 먹고 싶어서 떡국을 두 그릇 넘게 먹곤 했다.

지금은 한 살이라도 덜 먹고 싶어서 떡국을 반 그릇만 먹고 싶다.

서른 살 즈음에 일산 호수 근처 옆에 있는 교회에 갔는데 거기서 가수 서유석 씨를 만났다.

그분은 교회에 오는 성도들을 위해 주차 안내 봉사를 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청하면 손을 꽉 잡아주셨는데 그 손의 악력을 잊을 수 없다.

그분의 대표곡은 아마 <가는 세월> 아닐까 싶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말로 시작하는 그 노래를 나도 가끔 흥얼거린다.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것을 누가 막을 수가 있겠는가?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그러나 받아들이는 마음은 크게 둘로 나뉜다.

반가운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그것이다.




아잇적에는 한 해를 맞이하는 게 반가웠다.

몇 살이니 묻는 어른에게 다섯 손가락 쫙 펼쳐서 다섯 살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다른 손 손가락을 더해서 여섯 살, 일곱 살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한 학년 올라가서 선배가 되는 게 반가웠다.

후배들이 더 많이 생기는 게 반가웠다.

청춘일 때도 한 해를 맞이하는 게 반가웠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카운트다운을 하는 시간도 반가웠고, 종로에서 울려 퍼지는 보신각 종소리를 방송으로 듣는 것도 반가웠다.

이 시간 내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게 반가웠고 그 사람과 새해에 사랑의 꿈을 꿀 수 있어서 반가웠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되어서 반가웠고 더 깊은 공부를 하게 되어 반가웠다.

그동안 갈고닦은 내 실력을 펼칠 수 있는 직장을 얻은 것도 반가웠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가들이 태어나는 게 반가웠고 그 아가들을 키우는 게 반가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 해를 맞이하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별로 나아진 것도 없는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되어 두려웠다.

나이는 한 살 더 먹는데 나잇값도 못 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웠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올망졸망 나를 바라보는 식구들이 있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는 것 같은데 제자리걸음만 하고 뱅뱅 돌기만 하는 것 같아 두려웠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왔는데 다가오는 한 해를 또 어떻게 버틸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어 두려웠다.

머리에 흰 숱이 늘어가고 눈이 침침해지고 예전 같지 않게 몸이 쉬 피곤해질 때 두려웠다.

예전의 아버지 어머니 나이만큼 되었는데 이루어 놓은 게 변변치 않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생각에 두려웠다.

점점 늙어가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니 두렵고 점점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두려웠다.




우리는 반가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살아간다.

달이 차면 기울어지듯이 반가움이 커지면 그 뒤를 따라 두려움이 싹을 틔우고 두려움이 물러난 자리에는 반가움이 찾아온다.

지금 반가운 상황이라고 해서 마음 높아지지 말고 지금 두려운 상황이라고 해서 마음 무너져도 안 된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니다.

좋은 일만 가득한 사람은 그 좋은 일이 좋게만 보이지 않는다.

새해에는 말은 날도 있어야 하고 흐린 날도 있어야 한다.

비 오는 날도 있어야 하고 개인 날도 있어야 한다.

바람 부는 날도 있어야 하고 눈보라 치는 날도 있어야 한다.

그 모든 날들을 우리가 살아갈 뿐이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홍자성이란 사람은 풀뿌리만이라도 씹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담아 <채근담(菜根譚)>이라는 책을 썼다.

새로운 한 해는 어떻게든 잘 버티자.

그게 이기는 길이고 복 받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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