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길래 자동차를 지하주차장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새벽 5시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자칫 자동차가 얼어붙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설마 자동차가 얼어붙기야 하겠냐마는 자동차의 배터리는 얼 수 있다.
군 생활을 강원도 홍천에서 복무했다.
운전병이었다.
평상시에는 운전병인 게 좋다.
남들이 걸어갈 때 운전병을 차를 타고 간다.
3보 이상 승차가 운전병의 신분을 말해줬다.
그런데 겨울철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남들은 내무반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을 때 운전병은 자주 비상상황에 처한다.
특히 밤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질 때는 밤사이에 한두 번 차고로 내려가서 자동차에 시동을 켠다.
혹시나 배터리가 얼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안에 전해질이라는 액체가 있는데 그게 얼 수 있다.
배터리가 얼면 시동이 안 걸린다.
만약 전시 상황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자동차를 버려야 한다.
군용 자동차에 비해 사제 자동차는 부품들이 좋다.
배터리도 물론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배터리라고 하더라도 전해질이 얼 수 있다.
배터리 개발 업체는 영하 20도 밑에서도 얼지 않는 전해질을 만들려고 애를 많이 쓴다.
언젠가는 영하 30도, 40도에서도 얼지 않는 전해질을 개발할 것이다.
남극이나 북극은 물론 달과 화성에서도 얼어붙지 않는 배터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아직은 그만한 기술이 없다.
그러기에 영하 10도 밑으로 기온이 떨어지면 나는 배터리 걱정을 한다.
물론 배터리가 얼어붙으면 보험사에 연락해서 긴급출동 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한두 번 응급처치를 하면 그다음에는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
그 단계에 이르기 전에 미리 배터리 관리를 잘 해 두면 배터리의 수명을 길게 할 수 있다.
배터리가 좀 오래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
어쨌거나 자동차를 지하로 옮기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근데 이게 웬일일까? 내 자동차에 전조등과 미등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비상등이 켜진 것처럼.
3시간 전에 주차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때 비상등을 켜지 않았다.
분명하다.
그런데 이게 웬 비상등일까? 리모컨 키를 꺼내서 버튼을 눌러봤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큰일이다.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다.
낭패다.
보험사에 연락해서 도움을 구할 수밖에.
보험사 안내 담당자는 친절히 응대해 주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출동기사가 도착했다.
비상키로 차 문을 열고 보닛 뚜껑을 들어 올리고 배터리 긴급충전을 했다.
부르릉 시동이 걸렸다.
다행이다.
출동기사에게 내가 전조등을 다 껐는데 왜 깜빡이불이 켜졌을까 물어봤다.
출동기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배터리가 오래돼서 그래요.
배터리가 3년이 넘었으니 수명이 다 될 만도 하죠.
거기다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래요.
배터리 때문에 식겁한 밤이 되었다.
만약 그때 내가 내려오지 않았다면 새벽에 일어나서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자동차가 제아무리 좋고 크고 최신형이어도 배터리가 얼어붙으면 한 바퀴도 움직일 수가 없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힘은 배터리에게서로부터 나온다.
모양새는 다르지만 우리 삶에도 배터리가 있다.
그것 없이는 우리 삶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우리 삶을 움직이게 하는 배터리는 무엇일까? 코카콜라 회장은 자기 혈관에는 코카콜라가 흐른다고 했다는데 아마 그의 삶을 움직이는 배터리는 코카콜라였나 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게 삶의 배터리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삶의 배터리는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에 삶이 움직인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이 없다면 삶은 멈춰버릴 것이다.
우리 삶의 배터리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