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은 선물의 계절인가 보다

by 박은석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내 기억이 날갯짓을 한다.

한 번 푸드덕거리면 10년 전으로 날아가고 두 번 푸드덕거리면 20년 전으로 날아간다.

네 번 푸드덕거리고 다섯 번 푸드덕거리기 직전에 그만 내려가자고 한다.

열 살 정도의 때 묻은 꼬맹이가 시골의 작은 교회로 들어간다.

성탄발표회 준비가 한창이다.

성탄절이 되려면 한 달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성탄 발표 연습을 한다고 난리다.

예배당 밖에서 술래잡기, 숨바꼭질로 예열을 하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예배당 안으로 몰려든다.

목소리 좋은 아이는 독창을 부르고 목소리가 애매한 아이들은 중창팀이 되었다.

다 같이 어우러지는 합창은 맨 나중에 연습한다.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하나는 율동팀이 되어 어쭙잖은 무용을 했고 스무 살 어간의 청년들은 연극을 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난롯가에 둘러앉아 귤을 까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었다.




성탄발표회는 주로 크리스마스이브에 열렸다.

구경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온 동네 사람들이 예배당으로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1년에 딱 한 번 그날만 예배당에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발 잃어버릴 수 있으니 봉다리에 잘 담아서 들어가라는 광고가 열댓 번도 더 울려 퍼졌다.

그날만큼은 자신의 종교가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무속신앙을 가진 사람이든 모두 같은 공간 안에 모여 앉아 아이들이 준비한 성탄발표회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 시절 성탄절은 모든 사람을 위한 축제의 시간이었다.




성탄발표회가 끝나면 밤늦도록 게임과 놀이가 이어졌다.

성탄 카드도 나누고 선물도 나누었다.

이 밤에 잠들어버리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기에 아이들은 안간힘을 쓰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밤을 지샜다.

드디어 12월 24일과 25일이 교대하는 밤 12시가 되면 아이들은 또다시 교회로 모여들었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의 새벽이다.

성탄의 소식을 빨리 전해주고픈 마음이었다.

여남은 명씩 조를 이루어 골목골목을 누비고 과수원길을 가로질러 갔다.

하얀 것은 눈이요 까만 것은 물이니까 조심하며 걸었다.

하늘에선 별똥별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목적한 집 앞에서 조용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새벽송을 불렀다.

그러면 방에 환하게 불이 켜지고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들이 나오셨다.

내 어머니도 그러셨고 친구들의 어머니들도 그러셨다.

언제 준비하셨는지 푸짐해 보이는 선물 보따리도 하나 들고 나오셨다.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성탄 찬양을 함께 부른 후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했다.

그러면 어머니들도 “메리 크리스마스, 너희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축복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 시절 성탄절은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축복을 베푸는 시간이었다.




새벽송을 다 마치고 예배당에 다시 모이면 받아온 선물꾸러미를 풀어놓았다.

과자와 사탕, 장난감이 한가득 쌓였다.

선물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을 지내면서 선물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성탄절만큼은 두 손에 선물이 가득했다.

학교 운동회 때는 순위에 들어야 상품을 탈 수 있었지만 성탄절에는 누구나 다 선물을 받았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오시는지 안 오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보다 선물이 더 중요했다.

성탄절은 모든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는 날이었다.




다시 날갯짓 몇 번을 했더니 지금의 나로 돌아왔다.

성탄발표회도 하지 않고 새벽송도 돌지 않는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는 일도 없어졌다.

그래도 성탄절이 다가오면 여전히 선물이 생각난다.

아기 예수님이 성탄절의 선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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