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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칠사(守令七事)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by 박은석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경목 교수가 쓴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이란 책이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남긴 편지를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려보는 책이다. 편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식을 주고받는 매체이다. 우선은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고 그다음에는 부탁할 내용을 적는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편지를 유용하게 잘 사용하였다. 유용하게 잘 사용하였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편지를 통해서 온갖 청탁을 하고 그 청탁을 들어주었음을 편지를 통해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지방 수령으로 발령이 나면 그 지방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청탁이 들어왔다. 그 동네에 괜찮은 규수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청탁도 있고, 이번에 그곳으로 갈 일이 있는데 묵을 집 좀 준비해 달라는 청탁도 있고, 도망간 노비를 잡아달라는 청탁도 있고, 제사상에 올라갈 음식을 준비해 달라는 청탁도 있었다.




지방 수령으로 발령받아 갔으면 그 지방을 잘 다스려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실제로 지방으로 발령받은 수령들은 임금님 앞에 나아가 인사를 드리고 떠났다. 그때 임금은 지방 수령으로 발령받은 이들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곤 했다. 지방 수령이 해야 할 중요한 업무는 농상성(農桑盛), 호구증(戶口增), 학교흥(學校興), 군정수(軍政修), 부역균(賦役均), 사송간(詞訟簡), 간활식(奸猾息)의 7가지였다. 농상성은 농사와 뽕나무 재배를 흥성하게 하는 것이며 호구증은 인구를 크게 늘리는 것이다. 학교흥은 학교를 세워 백성을 잘 가르치는 것이며 군정수는 외적의 침입에 잘 대비하는 것이다. 부역균은 부역을 균등히 해서 백성들의 불만을 없애는 것이며 사송간은 소송을 잘 처리해서 백성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간활식은 백성들이 교활하고 간사한 습관에 젖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 수령들은 이 7가지의 수령칠사(守令七事)를 실천하는 것보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들어온 온갖 청탁을 들어주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는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청탁을 해야 하고 청탁을 받으면 가능한 한 잘 들어주었다. 청탁을 주고받음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할 수 있었다. 청탁은 개인과의 관계를 넘어서 집안끼리 서로 의지하고 힘을 모으는 역할을 했고 그 결과 거대한 정치적인 세력을 형성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치맛바람과 바짓바람, 아빠 찬스와 엄마 찬스 더 나아가 할아버지 찬스와 할머니 찬스까지 있었다. 어떻게든 청탁을 잘 넣고 들어줌으로써 원하는 사람을 얻고 재물도 얻고 신분을 상승시키고 집안을 크게 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했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고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던 때였다.




지방 수령들이 온갖 청탁을 들어주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령이 돌봐주지 않는데 백성들의 삶이 나아질 리가 없다. 분명히 수령으로 발령받았을 때는 수령칠사(守令七事)를 잘 실천하여 백성들을 잘 다스리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그렇게 순수했던 수령들이 지방에 내려가서 몇 달 사는 동안 수령칠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양에 있는 높은 양반들의 청탁을 들어주는 심부름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현실을 봤기 때문에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지었다. 수령이 지켜야 할 자세를 낱낱이 적어 놓은 책이다. 본인이 수령이라면 이렇게 백성을 다스리겠다는 각오를 다진 책이다. 나는 이 책이 모든 공무원의 필독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령이 해야 할 일은 청탁이 아니라 수령칠사(守令七事)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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