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속의 화초처럼 유리와 함께 사는 하루

by 박은석


요즘 주변에 우후죽순으로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브랜드 카페는 물론이거니와 개인의 이름을 내건 카페도 많다.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면 빵과 커피를 함께 파는 카페들도 보인다.

차별화된 전략 중의 하나로 식물원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들도 있다.

카페를 통유리창으로 꾸미든지 아니면 온실 속에 카페를 옮겨놓고 주변을 다양한 나무와 화초들로 장식한다.

더운 지방의 식물들로 꾸며 놓으니까 커피를 마시는 내내 머나먼 열대지방에 온 듯한 기분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발상을 누가 맨 처음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대단한 아이디어라 칭찬할 만하다.

유리로 만든 온실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조상들에게는 신기한 장소였다.

우리나라에 들어선 최초의 식물원은 창경원 식물원이다.

일제가 창경궁을 허물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는데 속셈은 우리의 궁궐을 능멸하려는 의도였다.




정치적인 의도가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창경원 구경을 무척 좋아했다.

난생처음 보는 동물과 식물을 구경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임금님의 집인 궁궐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식물원은 거대한 유리로 만든 온실이다.

그 안에 들어가면 따로 난롯불을 피우지 않아도 유리를 통해서 들어오는 햇살로 인해 따뜻하다.

그 따뜻한 기온에 의해서 열대지방의 식물이 아무 탈 없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을 수 있다.

온실 속의 화초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유리집은 안전하고 평온하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로 인해 식민지가 넓어지자 유럽 여러 나라들은 식민지의 나무와 꽃을 본국에 옮겨오려고 했다.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정성껏 옮기려고 해도 긴긴 항해를 거치면서 나무와 꽃과 풀은 모두 시들어졌고 죽고 말았다.




뭔가 좋은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하던 끝에 배 안에 유리 온실을 만들고 그 안에 나무와 꽃과 풀을 옮겨 놓았더니 바다의 짠 기운도 바람과 파도도 모두 이겨낼 수 있었다.

온실 덕분에 세계 각지의 식물들이 본 고장을 떠나 다른 대륙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온실 덕분이 아니라 유리 덕분이다.

유리가 발명되었기에 유리로 만든 집, 온실이 만들어졌으니까 말이다.

처음 유리를 발견한 사람은 반짝반짝 빛나는 그 영롱한 빛에 감탄을 자아냈을 것이다.

유리가 비싼 가격에 판매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유리를 제작하는 기술을 얻은 후로는 유리로 그릇도 만들고 창문도 만들고 집도 만들고 안경도 만들었다.

나무 판때기로 만든 창문과 유리로 만든 창문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차이를 드러냈다.

더군다나 유리에 색깔을 입혀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되자 유리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의 도구가 되었다.




도공들은 유리가루를 도기에 입혀서 반짝반짝 빛나는 자기를 만들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유리 안쪽에 은박을 입혀서 내 얼굴을 밝게 비추는 거울을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유리를 변형시켜서 볼록 렌즈를 만들고 오목렌즈를 만들었다.

그것을 이용해서 천체물리학자들은 별을 관측하는 망원경을 만들었고 미생물학자들은 손톱보다도 작은 존재를 관찰하는 현미경을 만들었다.

나의 일상생활은 유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유리와 함께 하루를 맺는다.

눈을 뜨자마자 바라보는 스마트폰 액정이 유리다.

화장실에 들어가 앉는 변기가 세라믹 유리다.

세수하고 양치하면서 바라보는 거울이 유리다.

자동차를 타면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집중한다.

사무실에 앉으면 내 앞에 컴퓨터 모니터라는 유리가 서 있다.

식당에 가서 음료수를 시키면 유리잔을 준다.

하루 종일 나는 유리와 함께 산다.

유리 안에 산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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