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서스코리아 대표 고윤 작가가 쓴 <왜 당신은 태도가 아니라 인생을 탓하는가>라는 책이 있다. 60명의 인생 스승들의 명언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아침에 한 스승, 저녁에 한 스승의 가르침을 듣는 구성으로 엮인 책이다. 고윤 작가는 20대 시절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다. 혈액암이라는 질병이 그를 괴롭혔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꼬이는 것일까?’라며 인생을 탓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생을 탓하지 않으려 했다. 절망스러운 인생을 보지 않고 희망스러운 인생을 보려고 했다. 그런 시선으로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인들을 살펴보니 그들도 비슷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갔음을 알 수 있었다. 위인들의 삶과 가르침을 그들의 태도로 바라보았더니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떤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사실 말이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이방인>, <페스트>의 작가인 알베르 까뮈가 남긴 명언이 있어서 잽싸게 오려왔다. 내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태도로 서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 보는 말이다. 또한 옆에 있는 사람이 내 곁에서 어떻게 서 있기를 원하는지 바라는 말이기도 하다.
“내 앞에서 걷지 말라, 내가 따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뒤에서 걷지 말라, 내가 이끌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곁에서 함께 걸으며 친구가 되어달라.”
“Don’t walk in front of me; I may not follow. Don’t walk behind me; I may not lead. Walk beside me and just be my friend.”
내가 누군가와 길을 걸을 때면 3가지의 모습이 나타난다. 첫째는 내가 그의 앞에서 걷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그의 뒤에서 걷는 것이며 셋째는 내가 그와 함께 걷는 것이다. 까뮈는 이 셋 중에서 함께 걷는 것을 원했다. 아마 자신도 누군가와 함께 걸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앞에서 걸어야 할 때가 있다. “나를 따르라!” 외치고 달려 나가야 하는 소대장은 분명 부하들 앞에서 걸어야 한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길을 나서는 부모는 당연히 자녀들보다 앞서서 걷는다. 등산동호회의 길잡이는 회원들 앞에서 걷는다. 그들은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을 지닌다. 검불도 헤치고 가시는 치우고 없는 길은 만들어 내기도 해야 한다. 그들의 용기와 추진력 때문에 뒤에서 오는 이들은 편안하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뒤에서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체력이 약해서 처질 때는 누군가의 뒤에서 걷게 된다. 잘 모르는 길이라면 경험 있는 사람의 뒤에 걷게 된다.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서는 내 몸을 숨기고 뒤에서 걸으려 한다. 앞보다는 뒤에 있는 게 훨씬 안전하다. 그러나 뒤에서 걷는 사람이라고 해서 거저 얻어먹는 것은 아니다. 뒤에서 걷는 사람은 앞에서 걷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뒤에서 잘 따라가고 있으니 염려 말고 앞으로 가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그들이 뒤를 깨끗이 정리해 주기 때문에 앞에서 가는 이들은 편안하다.
살다 보면 누군가와 함께 그 옆에서 걸어갈 때가 있다. 아니, 그렇게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같이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하면서 걸으려면 옆에서 함께 걸어야 한다. 내 걸음과 그의 걸음의 속도를 맞추며 걸어야 한다. 빨리 가려고만 하면 함께 가기 힘들다. 오히려 조금 천천히 걸어야 함께 갈 수 있다. 너무 느리게 가려고만 하면 함께 가기 힘들다. 속도를 조금 올려서 그의 보폭과 맞춰야 함께 갈 수 있다. 나를 따라오라고 다그칠 필요가 없다. 빨리 가라고 재촉할 필요도 없다. 그와 보조를 맞추고 그의 옆에서 함께 걸어가다 보면 우린 친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