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시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by 박은석


오래된 책을 보다가 속으로 ‘맞아, 그때는 그랬어.’라는 맞장구가 터져나온다. 내 기억저장고에는 1970년대의 조금과 1980년대와 90년대의 긴 날들, 그리고 밀레니엄 시대인 2000년대에서 지금까지의 숨가빴던 장면들이 저장되어 있다. 고무신을 뒤집어 배를 만들어 놀았던 유년기의 앨범을 넘기면 공기놀이, 숨바꼭질, 팽이치기, 딱지치기, 연날리기, 사방치기를 하느라 꾀죄죄했던 얼굴들이 펼쳐진다. 별을 보며 학교로 향했다가 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던 십대 시절에는 라디오에서도 ‘별이 빛나는 밤’이 울려 퍼졌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함성이 가시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와 대학이라는 공간이 성큼 다가왔다. 엽서 한 장, 편지 한 통에 크리스마스실과 우표를 나란히 붙여 보냈던 시절을 뒤로하고 허리춤에 삐삐 하나 달게 되었고 공중전화기 옆에 착 달라붙어 시티폰으로 전화를 하다가 벽돌 핸드폰을 장만했다.




하루 몇 대밖에 안 다니던 시내버스를 쫓아 달리며 그 꽁무니의 매캐한 냄새에 황홀해 했던 때가 있었다. 여름철 방역차량이 하얀 방귀를 뀌면서 달리면 동무들은 그 안개 같은 연기 속으로 빨려들어가 캑캑거리며 달려나갔다. 중학생 누나의 까만 세라복 교복이 예뻐 보였고 고등학생 형들의 알록달록한 교련복이 힘있어 보였다. 버스 안내양으로 취직한 동네 선배 누나의 옷매무시가 멋드러져 보였고 군복 입고 다니는 대학생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어서 커서 군인이 되고 싶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운전사가 아니면 차장이어도 괜찮았다. 하루 종일 실컷 자동차를 탈 수 있으니 정말 즐겁고 행복할 것 같았다. 여름철 더위가 심할 때는 시원한 수박화채를 먹고 싶었다. 어머니가 큰맘 먹고 석윳집에서 얼음을 사오기만을 고대했다. 집에 냉장고가 들어오기 전에는 여름에 얼음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먼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상의 풍경이었다. 내가 살았던 모습이고 내 동년배들이 살았던 모습이다. 아직도 눈에 선한데 오래전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다음,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여러 단계의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들을 겪으면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솔방울을 줍고 장작을 패서 군불을 때던 아이가 연탄보일러, 기름보일러, 도시가스보일러를 거쳐 전기로 방을 데우는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 이런 세상이 올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살다 보니 엄청난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의 한복판에서 내가 변화의 이기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 너무 편리해진 생활이다. 맘만 먹으면 하루에 전국 어디든 다녀올 수 있다. 지구 끝에 있는 사람과도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몇 번 터치만 하면 원하는 모든 것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근데 정말 그런가?




이 편한 세상이 펼쳐지던 1999년 4월 20일에 세계에서 가장 편안한 나라인 미국에서 엄청난 충격이 있었다. 미국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했다. 열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고 스물세 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 세대가 지나가지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을 가진 나라에서 가장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가장 행복할 것 같은 나라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사회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 교육학자들이 연구를 했다. 딱히 그럴듯한 대답은 내놓지 못했다. 그들의 말은 초등학생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던 중에 호주 콴타스항공의 경영자인 제프 딕슨이 인터넷에 한 편의 글을 올렸다. 많은 사람이 그 글을 퍼 나르면서 나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과연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생각하게끔 하는 글이다.




<삶의 주소> – 제프 딕슨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더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라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피우며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있고 너무 지쳐서 일어나며

너무 책을 적게 읽고, 텔레비전은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한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주며

거짓말을 너무 자주 한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수명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서두르는 것은 배웠지만 기다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엄청나게 일을 하지만 성공하지는 못한다.

자유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다.

키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관계는 더 나빠졌다.

맞벌이가 늘어나지만 이혼은 늘고

집은 근사해지지만 가정은 깨지고 있다.

세계 평화를 더 많이 이야기하지만 전쟁은 더 많아지고

여가 시간은 늘어났어도 기쁨은 줄어들었다.

식품은 다양해졌지만 영양가는 줄어들었다.


수많은 컴퓨터를 설치하여 더 많은 정보를 얻지만

소통은 더 줄어들었다.

아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친구는 줄어들었다.


더 빨라진 고속철도

더 편리한 일회용 기저귀

더 많은 광고 전단

그리고 더 줄어든 양심

쾌락을 느끼게 하는 더 많은 약들

쇼윈도에는 수많은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저장고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시대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