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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22. 2020

아리랑을 부를 때 가슴이 뭉클한 사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아리랑 가사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아리랑은 오랜 시간 동안 민요로 전승되어온 노래가 아니라 영화감독 나운규씨가 1926년에 작사 작곡한 노래이다.

영화의 제목 역시 <아리랑>이었다.


그 이전의 아리랑은 강원도의 애환을 담은 정선아리랑 경인철도를 놓으면서 불렀던 경기도의 경기 아리랑,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로 유명한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의 찰진 곡조가 어우러진 전라도의 진도아리랑 등 각 지역별로 다른 곡조를 지닌 아리랑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26년을 지나면서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인 <본조 아리랑>이 대표적인 <아리랑> 곡이 되었다.




3.1일 만세운동 이후 일제는 조선을 통치하는 정책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었다.

힘으로는 굴복하려고 했는데 만세운동이 일어나니까 큰 충격을 받은 일제는 아예 조선의 문화를 바꾸겠다고 작당을 하였다.

그래서 겉으로 서방사회에게는 조선을 문명국으로 만들기 위해 잘 도와주고 있다고 치장하고 안으로는 조선의 문화를 싹둑 잘라버려서 민족 정체성을 없애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뒤이어 1930년대에 이르면 아시아를 침탈하려고 조선을 병기창고로 만들고 조선인들을 총알받이로 만들기 위해서 내선일체라는 허울 좋은 말을 꺼내들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민족말살정책으로 돌아섰다.

자기들은 1등 국민이고 조선인은 2등 국민이고 중국인은 3등 국민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들도 만들어냈다.

생각할수록 열 받는다.


일제는 조선의 문화는 미개한 문화이기에 문명국인 일제와 서구의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면서 우리의 문화와 문학, 예술에 대해서 철저하게 검열하고 제재를 가했다.

이 시기를 거쳐 1934년에는 ‘의례준칙’을 발표하여 우리의 설날은 구정(舊正)으로 부르고 설날과 추석 이외의 명절들은 다 없앴다.

정월대보름, 단오 등이 사라졌고 농악과 풍물놀이 등의 행사가 금지되었다.

장례식 날짜를 3일로 정하고 상복의 디자인을 바꾸었으며 일본 왕실의 상징인 하얀 국화꽃으로 헌화를 하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국화꽃으로 헌화를 하게 되었다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독교 문화가 자리매김한 서양의 경우에도 장례식 때 헌화는 다양한 꽃으로 한다.

어쨌든 일제는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지독하게 통제를 하였다.




그런데 그런 시기에 1926년에 <아리랑>이라는 영화가 검열을 통과한 것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단성사에서 상영된 아리랑을 보려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표를 구했지만 늘 매진이었다.

일제의 앞잡이가 여동생을 농락하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 주인공 영진이 낫을 들고 그놈을 처단했다.

그 죄목으로 일본 순사에게 잡혀가는데 동네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심정으로 노래를 부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그 모습을 본 영진은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삼천리강산에서 태어난 것이라며 자신을 위해서 울지 말라고 조금 있으면 살아날 것이라며 끌려간다.


그렇게 영화는 끝나지만 관객들은 나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다 같이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영화는 끝났어도 아리랑은 끝나지 않았다.


이후 아리랑은 조선인들이 모이는 곳마다 불리었다.

한반도의 식민지 백성들도 불렀고, 만주와 간도에서 투쟁을 이어간 독립운동가들도 불렀고,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간 이들도 불렀고 위안부로 끌려가 성착취를 당했던 여성들도 불렀다.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에서도 불렀고 멕시코의 선인장밭에서도 불렀다.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했던 까레이스키들도 불렀고, 지금은 대한민국과 북조선에서 모두 무형문화유산으로 정해서 부르고 있다.


몇 년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김연아가 갈라쇼에서 아리랑에 맞춰 스케이팅을 했는데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12권의 책으로 <아리랑>을 엮었는데 구구절절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살아서 전해지고 있다.




아리랑을 부를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이 바로 한국인이다.

그런데 30년 전인 1990년에 미국에서 아리랑에 대한 엄청난 일이 또 일어났다.

칼빈 대학교 교수이며 찬송가 편찬위원인 버트 폴먼(Bert Frederick Polman)은 아리랑의 곡조가 너무 아름답다며 가사를 붙여서 찬송가 곡으로 만들었다.

12명의 미국과 캐나다 심의위원들이 3천곡이 넘는 노래들을 정리하여 20년 만에 새찬송가를 편찬하는 중에 만장일치로 아리랑을 택했다.

그래서 지금 미국과 캐나다의 찬송가 229장에 아리랑 선율이 들어가 있다.

제목은 ‘그리스도의 충만하심(Christ, You Are the Fullness)’이다.


아리랑이 K-Pop보다 훨씬 전에 미주 지역을 강타하였던 것이다.

이제 아리랑이 울려 퍼지면 전 세계인의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리랑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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