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세상에 대한 나의 우려

by 박은석


요즘 어디에 가나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들린다.

사람들이 가진 지식들을 수집해서 그것들을 데이터로 처리하여 저장하고 그 데이터를 AI가 필요할 때마다 뽑아서 사용한다.

처음에는 그 지식이란 게 대단하지 않을 것 같지만 지식이 쌓이고 쌓여 면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이 활용하게 된다.

빅데이터는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얻은 정보들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살아가면서 다양한 정보를 생산한다.

하루 24시간 움직이는 모든 동작들이 정보가 되고 이야기하는 모든 말들이 정보가 된다.

이 정보 중에는 사실인 정보도 있고 거짓인 정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빅데이터는 어떤 정보가 사실이고 어떤 정보가 거짓인지 분간한다.

왜냐하면 정보의 양이 많으면 사실인 정보와 거짓인 정보를 걸러내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가령 여러 친구 중에 제주도에 갔다 온 친구가 한 명뿐이라면 그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제주도에 대한 확실한 정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친구가 제주도에 다녀오고 열 명, 스무 명의 친구들이 제주도에 다녀오면 각자가 들려주는 정보가 다양할 것이다.

그러면 제주도에 대해서 거짓된 정보를 분간할 수 있게 된다.

정보의 양이 많으면 그렇게 된다.

빅데이터는 이렇게 사실과 거짓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즉, 빅데이터는 우리에게 언제든지 정답을 알려줄 수 있다.

여기서 우리의 고민이 생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빅데이터는 금방 알려준다.

비행기는 한 시간, KTX는 두 시간 반, 고속버스는 네 시간 반, 자가용은 대여섯 시간.

그러면 우리는 선택을 하기 쉬워진다.

가장 빨리 가려면 비행기를 타면 된다.

정답이다.

이처럼 빅데이터는 언제나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준다.




그런데 우리는 정답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을 택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편안히 풍경을 바라보면서 가는 기차를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고속버스에서 한숨 자면서 가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직접 운전하면서 가는 것을 즐긴다.

가장 빠른 길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는 정답이 있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사람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정답이다.

왜 그 길을 택했냐고 묻는다면 그 길이 자기가 좋아하는 길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사람마다 정답이 다르고 사람이 선택한 그 모두가 정답이다.

인공지능은 이걸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정답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에 그 길을 따르라고 한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로 가지 않으면 내비게이션이 화를 낸다.

계속 경고음을 보내며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한다.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금방 정답을 알려준다.

기다리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질문을 하면 촤르르 대답한다.

참 편리하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모르는 게 있다.

사람은 기다리는 즐거움을 즐긴다.

낚시꾼은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순간도 즐기지만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리는 시간도 즐긴다.

기다리는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모든 환희의 순간 이전에는 간절한 기다림의 시간이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우리에게서 기다림의 시간을 빼앗으려고 한다.

우리가 지금껏 즐겼던 그 쫄깃쫄깃하고 긴장되었던 시간을 없애버리려 한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기다리면서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의 바다에 빠져드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빨리 그 생각의 바다에서 나오라고 다그친다.

인공지능이 다스리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생각 없이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생각 없는 사람이 되기 싫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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