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생각으로 보는 성경이야기
창세기 12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보여 주실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창세기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람은 그 명령을 따라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길을 떠났다. 아브람 나이 칠십오 세 때였다. 조카 롯이 함께 갔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서 행동했다. 많은 목사님들이 이러한 모습을 참된 믿음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삶의 정황이란 게 있다. 기록은 짧지만 삶의 정황은 길다. 아브람이 정말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길을 떠났을까? 그건 아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몰랐다면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동서남북 중 어느 방향으로 떠나야 하는지 고민만 하다가 인생 끝났을 것이다. 아브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창세기 12장 5절에 보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한다. 목적지는 가나안땅이었다.
“(창세기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 가족만 떠난 것도 아니다. 물론 조카인 롯의 가족의 함께 했지만 그렇게만 떠난 게 아니다. 고대사회는 1차 산업사회이다. 농사나 육축으로 생업을 이어갔던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가족들이 가능하면 모여 살았다. 가족을 떠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주하려는 곳에서 나그네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기에 잘 알지도 못하는 나그네를 받아들이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살던 곳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도도 없고 나침반도 없는 시절이었다. 길을 잃으면 굶어 죽을 게 뻔했고 도둑과 강도떼와 맞설 수도 없었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모여야만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창세기 11장 31절과 32절을 보면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함께 길을 떠났다. 비록 중간 지점인 하란까지 갔을 뿐이지만 아버지가 함께했다는 사실은 아브람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창세기 11:31~32)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아브람은 여행 중간 지점이었던 하란에서 재산도 늘렸고 사람들도 많이 얻었다. 나중에 조카 롯을 구출하려고 전쟁에 뛰어드는 일이 있는데 창세기 14장 14절에 보면 아브람의 집에는 이미 318명의 사병이 있었다. 성경에서 사람의 숫자는 일반적으로 20세 이상인 남성의 숫자였다. 그렇다면 318명의 사병이 있었다는 것은 318개의 가정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계산한다면 아브람은 단순히 부인과 조카 가족만을 데리고 길을 떠난 게 아니라 수백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말이 된다. 고대사회에서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 이주한다는 것은 적어도 수백수천 명이 동행해야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창세기 14:14)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70세 때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창세기 11:27). 70세 때 세쌍둥이를 낳은 게 아니라 70세가 되었을 때 3명의 아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아브람이 큰아들은 아니다. 성경의 중심인물이니까 아브람의 이름이 먼저 언급되었을 뿐이다. 어쨌든 데라는 아브람과 함께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하란에 머물다가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데라는 205세까지 살았다(창세기 11:32).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는 75세였다. 이때 아버지인 데라의 나이는 145세였다고 볼 수 있다. 아브람은 하란에서 잠시 머물다가 가나안땅으로 갔다. 아브람 생애의 나이들을 살펴보면 그렇다. 하란에서는 몇 개월 정도 머물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하란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많이 얻었다. 창세기 12장 5절이 증명한다.
“(창세기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마 아브람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인 갈대아 우르라고 하는 대도시 출신이었기에 하란이라고 하는 중소도시에서 경제적인 부를 창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 몇 개월 동안이었지만 아브람은 엄청난 부를 얻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브람이 새삼 대단한 사람임을 인정하게 된다. 문명의 중심지에 살던 사람이 변방의 시골 동네로 이주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지방의 산골짝으로 이사해서 사는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 쉽지 않은 결정을 아브람이 단행했으니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브람에게도 큰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서 205세로 생을 마감했다. 145세에 길을 떠난 아버지가 205세까지 살았다. 하란에서 살았던 햇수가 무려 60년이다. 그 시간 동안 아브람은 가나안에 있었다. 함께 길을 떠난 아버지를 중간 지역인 하란에 남겨 두고 아브람은 가나안으로 계속 떠나간 것이다. 얼핏 보면 불효막심한 자식 같다. 그 당시 그 동네에서도 고려장(高麗葬)이란 게 있었다면 아브람이 아버지를 고려장 한 것이다. 아브람도 나와 다를 게 없는 인간이었기에 이때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이 아버지를 하란에 남겨두고 떠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나는 아버지 데라의 결단이었다고 보고 싶다. 아브람은 자식 된 입장에서 아버지 데라를 끝까지 모시고 가려했을 것이다. 그런데 데라가 가나안 땅까지 가지 않고 하란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은 데라의 고집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갈 수 없으니, 나를 여기 두고 너희는 갈 길을 가거라.”
만약 아버지 데라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브람은 절대로 아버지를 하란이라는 동네에 두고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삶의 정황상 아버지가 엄하게 말했을 것 같다.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길을 계속 가거라.” 그 후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하란에서 60년 동안 더 살다가 삶을 마감하였다. 그동안 아브람은 머나먼 곳 가나안땅에 정착하고 있었다.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서 삶을 마감한 데라를 조명해 본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후에 여호수아가 데라의 신앙을 간단히 소개하기는 했다. 하나님 신앙이 아니라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했다.
“(여호수아 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그러나 데라가 없었다면 아브람(아브라함)도 없다. 데라가 함께 했기에 아브람이 길을 떠날 수 있었고 데라가 하란에서 결단했기에 아브람이 가나안에 갈 수 있었다. 데라의 신앙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데라는 아브람을 위해 하나의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다.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라는 징검다리를 밟고 지나갔기에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징검다리가 된다.
“나를 밟고 넘어가라”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끔 무등을 태워주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자신들의 키로는 아빠 허리춤 정도의 높이밖에 볼 수 없었는데 무등을 태웠더니 높은 위치에서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어서 좋아했던 것 같다. 아이들 혼자만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부모의 어깨에 올라타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 믿음도 그러하다. 부모가 징검다리가 되고 사닥다리가 되어 줄 때 자녀는 부모를 밟고서 더 넓은 세상, 더 큰 믿음을 보게 된다. 아브람은 혼자서 고향을 떠난 게 아니다. 조카 롯이 함께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고 무엇보다 아버지 데라가 함께 했다. 아버지가 징검다리를 하나 놓아주었기에 아브람이 그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