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생각으로 보는 성경이야기
드디어 아브람이 가나안땅에 들어갔다.
“(창세기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땅까지는 족히 800킬로미터 이상 걸렸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텐트를 걷고 가축들을 이끌고 가다가 점심 때면 또 머물러서 밥을 먹고 더위를 피하고 낮잠도 자고 다시 길을 떠나 저녁에 텐트 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삶의 반복이었다. 가축들 때문에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많이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루에 10킬로미터 정도 이동하지 않았을까 싶다. 중간에 하란에서 잠시 머물렀기 때문에 여행 일정은 꽤 길었을 것이다. 창세기 12장 5절에 보면 하란에서 소유물과 사람들을 얻었다고 했으니까 아마 장사를 했던 것 같다. 갈대아 우르라고 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에 살았던 아브람이다. 당시 최고로 발달된 도시에서 지낸 사람이었으니까 하란이라는 작은 도시에 머물게 되었을 때 아브람의 눈에는 무엇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확연히 보였을 것이다. 어쨌든 아브람은 하란에서 부자가 되었고 막대한 재산을 챙겨서 가나안땅에 무사히 도착했다.
하지만 가나안땅에 정착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이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농사도 짓고 육축도 하고 도시도 건설하였다. 알콩달콩 살았을 것 같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늘 걱정거리가 있었다.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인류 역사 속에서 먹거리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불과 70년 정도밖에 안 된다. 2차 세계대전 후 쌀, 밀, 옥수수와 감자 등을 집중적으로 개량해서 생산했기에 가능했다. 그전까지는 세계 어느 나라든 먹거리가 부족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실정이고 보면 4천 년 전에는 먹거리의 문제, 생계의 문제가 굉장히 심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방인, 나그네를 마을에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물과 식량을 나눠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낯선 사람은 들이지 않는 게 상책이다. 아브람도 그런 대접을 받은 것 같다. 나중에 창세기 14장 14절에 나오지만 아브람에게는 318명의 사병이 있었다. 장정 318명이라면 성인 여성도 300명이 넘었을 것이다. 아이들까지 합하면 아브라함 일행은 족히 1천 명이 넘었을 것이다. 그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기에는 가나안 부족들이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람은 가나안땅 중부 지역인 세겜까지 내려갔다.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러 거기에 잠시 정착하였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 땅을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너무나 감격한 아브람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아브람이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겼다. 벧엘과 아이 사이이다. 벧엘은 나중에 아브람의 손자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고 아이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 정복을 할 때 두 번째로 맞닥뜨린 성이다. 가나안땅의 중간 지대이고 옆에는 요단강이 흐르는 곡창지대이다. 그곳에 정착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브람은 거기서도 잠시 머물렀다가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다. 아브람 일행에게는 가나안땅에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이곳이 괜찮다 싶으면 땅 주인이 와서 저리로 가라고 하는 격이다. 결국 아브람은 텐트를 걷고 이동한다. 점점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기근을 만난다. 가뭄이 너무 심했기에 애굽에 거류하려고 애굽으로 내려간다.
분명히 하나님이 이 땅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현실은 그 땅에 머물 수가 없었다. 믿음과 현실 사이의 괴리라고 할 수 있겠다. 신앙인들은 흔히 믿음으로 살겠다고 하는데 막상 현실의 문제를 대하게 되면 믿음으로 사는 게 무엇인지 헷갈린다. 많은 목사님들이 이 부분에서 아브람이 믿음이 없어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고 설교한다.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그 땅을 버리고 갔다는 말한다. 창세기 12장을 몇 번 살펴보아도 아브람이 믿음이 없었다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간 이유는 기근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가뭄이 오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간다. 아브람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아브람은 지금 가나안땅에 정착할 땅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아브람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을 뿐이지 지금 당장 주시겠다고 하신 게 아니다. 지금은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에 살고 있다. 만약 아브람이 그 땅에 눌러앉겠다고 하면 전쟁이 일어날 게 뻔하다. 먹고살기 힘든 시대였으니 당연히 전쟁이 일어난다. 그러면 아브람이 불리하다. 가나안 부족들을 상대하기에는 아브람의 힘이 너무 약하다. 어쩔 수 없이 아브람은 떠돌이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데 가뭄까지 겹쳤다. 살기 위해서 아브람이 택할 수 있는 카드는 애굽으로 가는 것밖에 없었다. 아브람을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말자. 그도 나름대로 믿음을 잃지 않고 살려고 했을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확하게 이해가 되어서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잘 안 들린다. 물을 찾아 상황에 맞춰 살아갈 때도 있다. 믿음 없는 삶이 아니다. 긴 시간이 지나 보면 그렇게 살아간 것도 믿음의 삶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산 정상까지 가는데 계속해서 오르막길만 나오는 게 아니다.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여러 차례 하면서 정상에 다다른다. 뱅뱅 돌아가는 것 같고, 왔던 길 되돌아가는 것 같고, 내리막길로 접어든 것 같지만 그 모든 길이 믿음의 길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도 믿음의 길이고, 오늘 내가 걸어간 길도 믿음의 길이다. 믿음이 약하다고 믿음이 없다고 자책하지 말자. 나는 충분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내 보폭에 맞춰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