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생각으로 보는 성경이야기
창세기 12장 10절에서 16절을 보면 아브람 때에 가나안땅에 기근이 들었다. 가뭄이 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브람은 가나안땅에서 정착할 곳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 떠돌이 나그네 신세인데 가뭄을 만났으니 본능적으로 물이 있는 애굽으로 이동했다.
“(창세기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여기서 아브람의 믿음을 운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에 기근을 만나면 선택할 카드가 없다. 무조건 물을 찾아 떠나가야 한다. 아브람이 애굽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애굽에는 나일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사실 애굽의 강수량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이집트의 연간 강수량은 20mm 정도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연간 강수량은 1,000mm를 넘나 든다. 이집트 여행 중에 비를 맞는다면 그날은 엄청난 축복의 날이라 하겠다. 비가 오지 않음에도 나일강은 늘 흐른다. 도대체 그 많은 물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일강은 아프리카 대륙의 중부에 있는 브룬디에서 시작한 백나일강과 에티오피아 산지에서 시작된 청나일강이 수단공화국에서 만나 사하라사막을 거쳐 이집트를 지나 지중해로 흘러간다. 강하류에 위치한 이집트는 비 한 방울 섞지 않고도 나일강의 풍부한 물을 거저 얻는 셈이다. 물만 얻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중부 지역이 우기에 접어들면 나일강은 대홍수를 일으킨다. 홍수는 많은 것을 쓸어가서 강 하류의 삼각주에는 엄청난 토사물을 쌓아놓는다. 그것들은 고스란히 거름이 되어서 농작물의 생육에 큰 도움을 준다. 이집트에 비가 오지 않음에도 농작물이 풍성한 것은 모두 나일강이 베풀어주는 혜택 때문이다.
아브람 당시의 애굽은 나일강의 혜택으로 거대한 문명을 이루었다. 나일 문명이다. 나일 문명은 아브람의 고향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들이 있었다. 그건 인류학자나 고고학자들이 연구할 영역으로 남겨두고 우리는 아브람에게 집중할 것이다. 아브람은 인류의 4대 문명(메소포타미아, 나일, 인더스, 황허 문명) 중에서 2개 문명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세계여행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브람은 메소포타미아에서 하란과 가나안을 거쳐 애굽에까지 왔다. 각 지역을 지나면서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오늘날뿐만 아니라 고대사회에서도 정보는 굉장한 가치가 있었다. 조선시대 각 지방의 유지들은 사랑채에 나그네를 들이고 숙식을 제공해 주었다. 인심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아무나 손님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손님으로 맞이한 것이다. 정보는 돈 몇 푼 밥 몇 끼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었다. 오늘날도 그렇다.
애굽에 가까이 이르게 되자 아브람에게 걱정이 생겼다. 아브람의 식솔이 적은 수가 아니었기에 애굽 사람들이 받아줄지 걱정되었을 것이다. 만약 애굽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는다면 아브람은 기근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애굽 사람들에게 아브람이 자신들을 받아주라고 간청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맨입으로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애굽사람들이 욕심을 낼 만한 무엇인가를 줘야 했을 것이다. 아브람은 분명 자기 재산 중의 일부분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브람이 거쳐왔던 지역에 대한 고급 정보들까지도.
그런데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브람이 자기 부인 사래에게 애굽에서는 오누이인 것처럼 행세하자고 제안했다. 사래도 그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순순히 그러기로 했다. 창세기 20장 12절에 나왔듯이 사실 아브람과 사래는 어머니가 다른 이복남매였다. 어떻게 오누이끼리 결혼하느냐고 의아해할 수 있겠지만 근친결혼은 인류 역사에 비일비재했었다.
“(창세기 20: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아브람이 자기 부인 사래에게 오누이처럼 행세하자고 하면서 건넨 말이 너무 우습다.
“(창세기 12: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사래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래를 빼앗고 자기를 죽일 것 같아 두렵다는 것이다. 도대체 사래가 얼마나 예뻤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더군다나 창세기 12장 14절과 15절을 보면 애굽의 고관들도 사래의 아리따움을 보고 바로(파라오)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그 결과 바로가 사래를 궁으로 불러들이고 아브람에게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줬다. 사래의 몸값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창세기 12: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성경의 이야기니까 덮어놓고 믿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사래의 나이가 지금 65세이다. 아브람과 열 살 차이다. 아무리 아브람 당시 인간의 수명이 길었다고 하지만 65세의 여인이 애굽의 절대권력자인 바로(파라오)의 부인이 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바로가 부인이 없어서 사래를 부인으로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부인을 두었을 것이다. 여러 지역의 부족들과 동맹을 맺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가 정략결혼인 것은 애굽인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가 사래를 궁궐에 부른 것도 정략결혼을 통해 아브람과 연대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었지 않을까 싶다. 아브람의 말대로 사래가 절세미인이어서 바로가 탐냈다고 하려면 굉장한 믿음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아브람에게는 사래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성일 수 있다. 제 눈의 안경이니까. 그러나 바로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젊은 여성이 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가 사래를 맞이한 것은 사래를 볼모로 잡아서 아브람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람은 애굽왕 바로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로 굉장한 그 무엇인가가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후에 창세기 14장 14절에 나오는 것처럼 아브람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사병이 318명이었는 점만 보더라도 아브람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바로의 입장에서는 아브람을 내쫓거나 대적하는 것보다 오히려 아브람을 받아들여서 이용해 먹는 게 훨씬 유익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아브람에게는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애굽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입장에서 사래는 볼모였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사래는 자기 입장을 표명할 수 없었을까? 남편인 아브람에게 어떻게 오누이행세를 할 수 있느냐고 한마디 할 수 있었지 않을까? 그러기에는 당시 사회환경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아브람이 염려했던 것처럼 누군가 아브람을 죽이고 사래를 끌고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사래를 잡아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브람이 죽으면 사래는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고대사회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이 홀로 살아가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래도 아브람의 제안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브람이 비겁했기 때문에,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사래를 누이라고 한 게 아니다. 그 방법이 자기들이 생각하기 자신들의 목숨을 유지할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브람도 사래도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며 내린 결정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부부가 서로 마주 앉아 잔뜩 걱정하며 눈물 흘리며 서로 끌어안고 등을 다독거리며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알려주신 방법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애굽에 들어온 아브람은 목적했던 것을 이루었고 걱정했던 것도 실제로 발생했다. 아브람이 목적했던 것은 애굽에 머물면서 기근을 피하는 것이었는데 바로가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아브람이 걱정했던 것은 설마 애굽사람에게 사래를 빼앗길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가 걱정했던 대로 사래를 빼앗겼다. 그런데 그냥 애굽사람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애굽의 최고 권력자인 바로에게 빼앗겼다.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