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내 공간은 거실의 컴퓨터 앞
저녁 어스름이 짙어오면
불을 끈다
모니터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눈을 맞춘다
동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사방이 조용해진다
플라톤이 말했다지
사람에게는 동굴이 필요하다고
스페인에는 알타미라 동굴이 있고
튀르키예에는 데린구유가 있고
로마에는 카타콤베가 있고
강원도 영월에는 고씨동굴이 있다무슨 사연인지
사람들은 동굴속으로 들어왔고
동굴에서 살면서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장례도 치렀지
하지만 무엇보다
동굴에서 많이 했던 일은
고요함을 유지하는 일이었으리라
"아"하고 조용히 소리내더라도
"와아아" 울려댔기에
동굴속에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서
고요함을 유지해야 했으리라
조용조용 사뿐사뿐
말보다는 눈빛으로
눈빛보다는 눈치로
눈치보다는 마음으로
고요함 중에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되었으리라
짜라투스트라가 동굴에서 나오자
사람들도 하나둘 동굴에서 나왔다
동굴 밖 세상은 시끌벅적 소란스런 세상
고요하면 아무것도 안 들리는 세상
하루 종일 소리치고 외치다 쓰러져 잔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다
이렇게 소리지르지 않고도 살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언제였더라?
어렴풋이 동굴이 하나 보인다
이제 그만 하고 여기로 들어오라는 손짓한다
아무것도 필요없으니 그냥 오라고 눈짓한다
고요함에 머물라고 한다
고요로의 초대장이 한 통 날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