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설 명절이 되니까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정지용의 시 <향수(鄕愁)>의 한 자락이 입가에 맴돈다. 넓은 벌 동쪽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 시에 등장하는 배경 중 실개천을 빼고는 전부 내 어렸을 적 고향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향수>는 정지용이 1927년에 발표한 시인데 1970년대의 내 고향이 이와 비슷했다는 것은 내 고향 제주도가 지지리도 가난한 동네였다는 증거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여서 물가가 높다느니 바가지가 심하다느니 말들을 하지만 내 어렸을 적만 해도 똥돼지를 버젓이 키우고 있었다.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아가면서 기다란 똥을 싸면 그것이 신기했고 나도 저 비행기를 타서 육지로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때의 내 꿈이 비행기 타고 제주도를 떠나는 것이었다. 오래전에 이미 그 꿈을 이루고 육지에 살고 있으니 나는 적어도 하나의 꿈은 성취한 사람이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하겠지만 같은 시기에 같은 꿈을 꾼 동년배들 중에는 그냥 제주도에 머물러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섬에서 나왔다고 해서 잘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제주도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안 되었다는 말도 아니다. 단지 내가 꿈을 하나 꾸었고 그 꿈을 현실화시켰다는 데 의의를 둔다. 그것도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꿈이 맞다. 적어도 어렸을 적 나에게는 굉장히 큰 꿈이었다. 사람을 제주도 사람과 육지 사람 두 종류로 구분했던 시절이었다. 제주도를 떠나 육지로 가는 것은 큰 모험이었고 대단한 업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나에게 제주도에서 농사지으며 살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어느 공휴일에 할머니한테 붙잡혀 밭에 가서 김매기를 했는데 퉁퉁대는 나에게 김매기를 잘해야 먹고살 수 있다고 하신 분이 우리 할머니시다. 할머니의 꿈은 손자인 내가 어려서부터 농사를 잘 배워서 굶지 않고 살아가는 것 정도였던 것 같다. 할머니에게는 굶지 않고 살아가는 게 굉장히 중요했을 것이다. 어려서는 당신이 굶으셨고 결혼 후에는 자식들을 굶기셨으니까 손자만큼은 굶기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좀 큰물에서 살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젊은 한철 결혼하시기 전에 육지에서 지냈던 시간이 있었다. 아버지는 군복무로 잠시 육지에서 지냈고 어머니는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서울 생활도 좀 하셨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육지 생활이나 제주도 생활이나 비슷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오면서 나는 할머니의 꿈인 제주도에서 밭일 잘하고 사는 삶을 뛰어넘었다.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도 가고 속초도 갔다 왔다. 비행기를 타고 먼 곳까지도 다녀왔다. 아버지 어머니가 보았던 곳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았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대단한 일이다. 나는 할머니가 보았던 세상보다 아버지 어머니가 보았던 세상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할머니의 세상과 아버지 어머니의 세상을 징검다리 삼아서 한 단계 또 한 단계 넘어갔을 뿐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에게 사람들이 천재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그때 뉴턴이 한마디 했다. “나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더 넓은 세상을 본 것뿐입니다.” 내가 지금 넓은 세상을 보게 된 것은 거인이었던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덕분이다. 부모님은 나에게 거인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