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전문가들은 성인의 경우 하루에 일곱 시간은 잠을 자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 말이 왜 경고인가 하면 나의 경우는 잠자는 시간이 하루에 다섯 시간도 안 되기 때문이다.
보통 새벽 한 시 삼십 분 정도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다.
세 시간 반이다.
새벽기도를 다녀와서 일곱 시부터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잠깐 잠을 잔다.
이러니 많이 자면 다섯 시간이고 적게 자면 네 시간 반 정도 된다.
의학 전문가들은 지금이야 그럭저럭 견뎌내는 것 같지만 나 같은 경우는 몸을 축내는 것이고 머지않아 그 대가를 톡톡하게 치를 것이라고 한다.
엄청 겁을 준다.
사실 나도 이런 패턴으로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일곱 시간 동안 잠을 자고 싶다.
하지만 원한다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아침 늦도록 잠을 자긴 한다.
헌데 그런 날은 새벽 늦게 잠자리에 든다.
내가 새벽 한 시 넘어서 잠을 자는 이유는 단순하다.
밤 열 시 전후로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 시간이 서너 시간 된다.
그러니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자연히 새벽 한 시 반 이후가 되고 만다.
몸을 생각해서,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생각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면 어떠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한 편 일리가 있다.
어렸을 적에 밤 아홉 시가 되면 텔레비전에서 울려 퍼졌던 아나운서의 멘트가 있다.
“어린이 여러분,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한 어린이가 됩시다.” 방학을 맞으면 제일 먼저 일과 계획표를 그렸는데 밤 아홉 시에 잠을 자고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는 계획을 세웠다.
무려 아홉 시간을 잠자는 계획이었는데 그 계획을 제대로 지킨 적이 거의 없다.
아침 여섯 시에 기상하는 것은 잘 지켰다.
아버지 어머니가 밭에 가시기 전에 깨웠으니까.
하지만 저녁 아홉 시에 잠에 든 적은 거의 없다.
“잠자라!” 말을 들으면 오히려 반항심이 생겨서 더 늦게 자게 된다.
어린이는 일찍 자지만 어른은 늦게 잔다.
나는 어린이 티를 벗어나고 싶었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밤늦도록 버텨야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밤 열 시, 열한 시가 되면 <주말의 명화>, <토요극장>, <명화극장>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외국영화를 우리말 더빙으로 방영하였는데 아버지가 이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주무시는 틈을 타서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텔레비전에 시선을 집중하곤 했다.
물론 나도 몰래 중간에 스르르 잠이 들었지만 말이다.
섣달그믐에는 뜬눈으로 밤 열두 시를 넘기려고 했다.
그전에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밤 열두 시까지 잠자지 않고 버텼다.
밤 열두 시에 크리스마스 새벽송 찬양대가 출발했기 때문이다.
고3일 때는 공부하느라 새벽 한 시까지 버티곤 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불면의 밤을 보낸다.
새벽 한 시, 두 시, 세 시, 네 시까지 잠이 안 오는 날이 있다.
네 시가 넘어가면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일과시간에 대한 부담감이 밀려온다.
그런 날은 단 한 시간만이라도 잠에 깊이 빠져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공휴일이나 긴 연휴를 맞이하면 새벽까지도 잠을 안 자고 허드렛일을 한다.
잠자기가 아깝다.
이 귀중한 시간을 잠자는 것으로 쓰고 싶지 않다.
일찍 자고 낮에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들 몰라서 그렇겠는가?
그러나 남들 다 잠이 든 깊은 밤에 나 홀로 깨어서 일하는 재미가 있다.
“너희는 지금 자고 있지? 나는 깨어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게 생긴다.
별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 시간 한 시 이십 분.
나는 아직도 잠자리에 들지 않고 끄적끄적 글을 쓰고 있다.
잠자기 아까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