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정말>에 수록-
사물의 형상을 본뜨거나 그림을 그려서 만든 글자를 표의문자(表意文字)라고 한다. 한자가 대표적인 표의문자이다. 그래서 한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어떤 그림이 보인다. 그림이 하나만 보일 때도 있지만 복잡한 한자일수록 여러 개의 그림이 보인다. 여러 개의 그림이 합쳐져서 그 글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한자어를 일일이 해체시켜 그 뜻을 재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파자(破字)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내 아버지는 어린 나를 앉혀놓고 사람 ‘인(人)’ 자를 써서 가르치셨다. 작대기 두 개가 서로 의지하는 것처럼 사람은 서로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공교롭게도 큰 작대기의 중간 부분에 작은 작대기가 받쳐주고 있으니 큰 작대기는 아담이고 작은 작대기는 하와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한자에 그런 기막힌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멋대로 식 해석이지만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이정록 시인은 밥그릇인지 국그릇인지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그릇을 의미하는 한자어 ‘기(器)’ 자를 써보았나 보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까 점점 재밌어진 거다. ‘개 견(犬)’ 자를 가운데 두고 ‘입 구(口)’ 자가 쪼르륵 있는 거다. 4명의 식구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다. 그 모습을 개고기를 먹는 모습으로 생각한 거다. 하긴 중국인들도 개고기를 먹는다. 잘 먹는다. 아하, ‘그릇은 개고기를 먹을 때 필요했던 거구나!’ 그릇 기(器) 자가 그 모습을 담았구나!
시인은 거기서 장난을 쳐 보았다. 개고기를 먹던 어른 둘이 자리를 뜨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아이 둘일 수도 있겠지만. 그랬더니 엄청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넷이 먹다가 둘이 없으니 ‘울 곡(哭)’ 자가 되었다. 누가 죽어서 통곡한다는 말이다. 넷이 먹다가 둘이 없어졌으니까 남아 있는 둘이 실컷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먹을 수가 없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가 있다고 해도 네 식구가 다 있어야 먹을 수 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시인은 다른 각도에서 그릇 ‘기(器)’자를 봤다. 놀라운 게 보였다. 개 한 마리를 사이에 두고 네 식구가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이다. 네 식구를 사이에 두고 개 한 마리가 재롱을 부린다. 하하 호호 방싯방싯 웃는 모습이다. 행복한 가족이다. 개 한 마리가 아빠의 그릇도 핥고 엄마의 그릇도 핥고 누이의 그릇도 핥고 동생의 그릇도 핥는다. 그런데 아무도 싫어하지 않는다. 개도 한식구가 되어 있었다.
개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아빠와 엄마가 밭으로 나갔나 보다. 이제 집에는 어린아이 둘과 개만 남았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 버려진 것 같아 무섭다. 마치 아빠 엄마를 잃은 것처럼 통곡을 한다. 그때 그 큰 개가 다가와 아이들의 눈물을 핥는다. 괜찮다고 나 여기 있다고 내가 지켜준다고 뭔가 수상한 녀석이 나타난다면 내가 다 쫓아내 준다고 컹컹거린다. “나도 한식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