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적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다.
밟으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의 본적은 거대한 계곡이다.
나무 잎새다.
나의 본적은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히 맑은 거울이다.
나의 본적은 차원을 넘어 다니지 못하는 독수리다.
나의 본적은
몇 사람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교회당 한 모퉁이다.
나의 본적은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이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생의 한 모퉁이를 돌 때 누구나 한번쯤 던져보는 질문이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하는 말을 받아들여 다리 밑으로 뛰어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별 너머에서 왔다고 하는 말을 받아들여 별나라로 다시 날아가려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면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은 우리를 단군의 자손이라고 하셨다.
하늘에서 환웅이 내려와서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때 마침 어떤 곰 한마리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산신령님께 사정사정했다.
산신령의 명령대로 그 곰은 삼칠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서는 진짜로 여자 사람이 되었다.
그 여자의 이름을 웅녀라고 불렀다.
환웅이 웅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가 단군이다.
단군으로부터 우리 조상이 한 민족을 이루고 나라를 이루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후손인지 아니면 곰탱이의 후손인지 헷갈렸다.
아버지는 우리가 신라의 첫 번째 왕 박혁거세의 후손이라고 하셨다.
밀양박씨 규정공파이며 박혁거세 할아버지의 73대 후손이라고 하셨다.
조선 500년, 고려 500년, 신라 1,000년을 합하면 2,000년이 되는데 내가 73대라고 하니까 한 세대가 평균 27년 정도라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이 고작 서른 살도 안 되어서 생을 마감했나 싶었다.
그건 아니고 스물일곱 살 즈음에 자식을 낳고 그 후에도 몇 년 혹은 몇 십년 더 살았을 것이라 혼자 셈을 헤아려 보았다.
교회 선생님은 우리가 아담의 후손이라고 하셨다.
아담으로부터 몇 세대를 내려왔는지는 차마 계산할 수가 없었다.
그냥 아담의 후손이고 죄를 지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에덴동산에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너무 좋을 텐데 그곳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에덴동산을 어떤 사람은 낙원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유토피아라고 했다.
존 밀턴은 낙원을 잃어버렸다며 <실낙원>이라는 책을 썼고
토마스 모어는 에덴동산과 같은 곳이 있다면 이런 곳 아닐까 하면서 <유토피아>라는 책을 썼다.
에덴동산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지만 꼭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사람들에게 있나 보다.
김소월 시인도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무척 궁금했나 보다.
부모님께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물어본 것 같다.
그의 시 <부모>에 그 내용이 나온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 김소월, <부모> -
가수 양희은이 이 시를 노래로 불렀는데
아마 양희은도 궁금했을 거다.
'나는 어떻게 생겨나왔을까? '
김종삼 시인도 궁금했을 거다.
당신의 본적이 어디인지 찾아본 걸 보니 분명 궁금했을 거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 본적을 찾아가는 길에는 마른 잎도 밟히고 계곡도 건넌다.
어느 한 여인의 눈동자도 스치고 독수리의 날개를 타고 가기도 한다.
어느 이름 모를 마을에서 잠깐 머물기도 하고
종소리가 댕그랑 울리는 교회당의 한 모퉁이도 돌아간다.
그 모든 곳이 나를 낳게 해 준 곳이다.
그러고 보니 나를 낳게 해 준 내 본적은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걸어갔던 그 발걸음들이다.
그들의 발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