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소개,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이준관

by 박은석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 이준관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무릎에 빨갛게 피 맺혀 본 사람은 안다.

땅에는 돌이 박혀 있다고.

마음에도 돌이 박혀 있다고.

그 박힌 돌이 넘어지게 한다고.


그러나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가슴에 푸른 멍이 들어 본 사람은 안다.

땅에 박힌 돌부리

가슴에 박힌 돌부리를

붙잡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 박힌 돌부리가 일어서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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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누군가 넘어졌다.


살면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일이 넘어지는 일인데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넘어진다.

삐져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헐거운 보도블록 잘못 밟아 넘어진다.

빗길에 넘어지고 물도랑은 뛰어넘다가 넘어진다.

종종걸음을 걷다가 넘어지고 휘적휘적 걷다가 넘어진다.

옆 사람과 부딪혀 넘어지고 옆 사람을 피하려다 넘어진다.

넘어진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게 창피하기만 하다.



겨울을 지날 때 제일 조심해야 할 일도 넘어지는 일이다.

눈길 위에서 넘어지고 눈 녹은 길에서 넘어진다.

얼음 위에서 넘어지고 얼음 부서진 길에서 넘어진다.

방구석에만 가만히 있어야지 했는데 방구석에도 넘어진다.

침대에서 내려오다 넘어지고 화장실에서 미끄러워 넘어진다.

또다시 넘어졌다고 누구에게 말하는 게 창피하기만 하다.




어르신들은 다리에 힘이 빠져서 넘어졌다고 한다.

힘이 빠진 다리를 보며 속상해하신다.

다리에 힘이 빠딱빠딱한 젊은 사람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하신다.


잘못 생각하시는 거다.


다리에 힘이 빠딱빠딱한 젊은 사람들도 잘만 넘어진다.

멀리 뛰다가 넘어지고 높이 뛰다가 넘어진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 넘어진다.




달리기 선수는 결승선 앞에서 잘 넘어지면 2등 하다가 1등이 되기도 한다.

무쇠 다리 같은 씨름선수는 앞다리 걸기로 넘어지고 뒷다리 걸기로 넘어진다.

멀리뛰기선수는 잘 넘어져야 기록이 좋고 높이뛰기선수는 미리 넘어질 위치를 계산해서 바를 넘는다.

야구 도루왕은 넘어지면서 한 베이스 앞으로 나가고 중견수는 넘어지면서 아웃 카운트를 하나 잡는다.

넘어지는 것은 창피한 게 아니다.

넘어지는 것도 기술이고 실력이다.




아장아장 아기들은 걸음 수보다 넘어지는 횟수가 더 많다.

엄마 아빠들은 아기들이 걸을 때도 좋아하지만 넘어질 때도 좋아한다.

넘어지는 것은 잘못하는 게 아니다.

평생을 일어서서 살 수는 없다.

그건 재앙이다.

일어서 있는 시간이 반이라면 넘어져 있는 시간이 남은 반이다.


오늘도 누군가 넘어졌다.

그리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