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 모르겠다.
아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전에는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이 많아질 거라 생각했다.
책을 읽다보니 모르는 것만 더 늘어난다.
글을 많이 쓰면 좋은 글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글을 쓰다 보니 내 글이 형편없다는 것만 알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런 걸 알게 되었다고 뿌듯해 했다.
그런데 같은 책을 보고서 누구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책을 헛 읽은 것만 같았다.
도대체 나는 뭘 읽은 걸까?
글을 쓰면서 내 글이 의미 깊고 좋은 교훈이 되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니 너무 쉽고 굉장히 와닿는 내용이 많았다.
그들이 쓴 글을 보고 내 글을 보니 나는 종이 위에 낙서만 해 놓은 것 같다.
도대체 나는 무슨 말을 쓴 걸까?
안다는 게 뭘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 신전의 글을 마음에 품고 다녔다고 한다.
그 글에 충격을 받았는지 자기 자신을 알고 싶어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할 텐데
소크라테스는 달랐다.
동네방네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아냐고?
사람들은 안다고 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들어보니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들 앞에서 기분이 좋아졌다.
적어도 자신은 그들보다 한 가지는 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남들보다 더 알고 있었던 그 한 가지는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사람들은 무지하면서도 자신들의 무지를 모르고 있었다.
이런 무식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남들보다 한 가지는 더 알았다는 게 맞는 말일까?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지식이 될 수 있을까?
공자 선생에게 제자인 자로가 물었다.
“선생님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나요?”
그 말을 들은 공자가 대답했다.
“사는 것도 모르는데 죽은 다음을 내가 어떻게 아느냐?”
공자도 모르는 게 있었다.
죽음 이후를 몰랐다.
근데 그거만 몰랐던 게 아니다.
공자는 사는 것도 몰랐다.
그렇게도 훌륭한 선생이지만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공자 선생이라면 알 것 같은데 모른다고 했다.
하긴 15년 동안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군주들을 만났는데
그 어떤 군주도 공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자의 가르침으로는 나라를 꾸려가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그 시대를 몰랐던 거다.
그 시대의 군주들을 몰랐던 거다.
아는 것 같은데 몰랐던 거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정말 그랬을까?
하나를 알면 모르는 것 열 가지가 보인다.
차라리 그 하나를 몰랐으면
나머지 열 가지는 눈 앞에 보이지도 않았을 거다.
그게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있어도 없는 듯 대하며 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을 거다.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왔다.
어쩔 수 없이 이만큼 알아버렸다.
어쩔 수 없이 더 나아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모르는 것만 더 많이 쌓이게 되어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