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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페이스북(facebook)에 열심히 글을 올리던 때가 있었다. 15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에게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구로 페이스북을 택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다. 15년 전이니까 딸아이는 유치원생이었고 아들아이는 어린이집원생이었다. 아이들과 놀이공원에서 찍은 사진, 키즈카페에서 찍은 사진, 마트에서 찍은 사진, 집에서 찍은 사진들에 곁들이는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다가 또 언젠가부터 바쁘게 살아가느라 페이스북을 돌보지 않게 되었다. 페이스북은 점점 잊혀가는 나의 SNS플랫폼이 되었다. 그런데 가끔씩 페이스북에서 ‘과거의 오늘’이라는 테마로 메시지가 온다. 사진 한 장과 함께. 사진 속 딸아이와 아들아이는 금방이라도 나에게 뛰어올 것 같다.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아빠를 부르는 것 같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지만 사진은 남아서 그날을 이야기해 준다.
세월은 흐른다. 물처럼 바람처럼.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다. 똑같아 보이는 4월 2일이지만 2026년의 4월 2일과 2025년의 4월 2일은 엄연히 다르다. 같은 날이 아니다. 2025년의 4월 2일은 흘러갔다. 다시 오지 않는다. 흘러간 강물도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날이 다시 오길 기다린다. 같은 강물이 다시 내 발을 적셔주길 바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그 자리에 서 있는다. 밤이 오고 새벽종이 울려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킨다. 날이 가고 달이 가도 그 자리를 지킨다. 변치 않는 우정을 돌멩이에 함께 새겼던 친구도 떠나간다. 영원한 사랑을 노래했던 연인도 떠나간다. 떠나간 그 사람이 다시 오지 않을 걸 안다. 그러면서도 습관처럼 미라보다리로 간다. 다리 아래로 강물이 흘러가는 걸 하염없이 바라본다.
미라보다리에 그만 가라고 말하지 마라. 미라보다리가 없으면 삶이 도둑맞은 것 같을 것이다. 미라보다리보다 더 크고 웅장한 다리가 있다고 말하지 마라. 미라보다리도 한때는 센강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다리였다. 세월이 흘러 미라보다리보다 더 큰 다리가 생겼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미라보다리가 파리에서 제일 큰 다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시인 귀욤 아폴리네르에게는 사랑하는 연인 마리 로랑스라는 화가가 있었다. 둘은 뜨겁게 사랑했다. 그 모습을 하늘이 시샘했는지 엉뚱한 사건에 둘이 휘말렸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도난당했다. 경찰은 귀욤 아폴리네르를 절도범이라고 생각했다. 생사람을 잡은 것이다. 아폴리네르는 1주일 만에 풀려났지만 자신의 명예에 큰 손상을 입었다. 사람들과 예전처럼 지낼 수가 없었다. 사랑도 떠나갔다. 연인이었던 마리 로랑스도 떠나갔다.
친구들도 떠나갔고 연인도 떠나갔다. 그런데 홀로 외로이 남은 시인 곁에 떠나가지 않은 존재가 있었다. 바로 미라보다리였다. 미라보다리에 서면 세월도 흘러가고, 바람도 흘러가고, 다리 위의 사람도 흘러가고, 다리 밑의 강물도 흘러간다. 그러나 미라보다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어쩌면 미라보다리는 시인 귀욤 아폴리네르를 쏙 빼닮은 것 같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존재로. 마리 로랑생을 떠나보낸 아폴리네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14년 말에 자원하여 군인이 되었다. 운이 없었는지 1916년에 포탄 파편을 맞아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페인독감에 감염되었다. 1918년 11월 9일, 38세의 나이에 삶을 마쳤다. 이틀 후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조금만 더 살았다면 미라보다리에 다시 한번 서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인생은 흘러간다. 그러나 미라보다리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