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Jan 08. 2021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보자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나보다 학번이 두 자리 뒤에 꾀죄죄한 얼굴의 박종철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소위 잘 나가는 학생이었고 그 친구는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던 학생이었다.

덩치도 작았고 성적도 별로였다.

운동선수들의 보호를 받으며 교실을 활보하던 나에 비해 그 친구는 조용히 자기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기말고사 기간이었는데 그 친구가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무슨 심술에서인지 종철이의 뒤통수를 툭 치고서 공부나 좀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너 때문에 우리 반 성적 평균점수가 낮아진다고 했다.

그 말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뒤통수를 얻어맞고 기분 나쁜 말을 들어서 화가 날만한데 종철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내가 무서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기말고사가 끝났고 우리는 한 달 보름 정도의 겨울방학을 보내고 다시 개학하였다.

1주일 정도 이어졌던 그 애매한 시간은 수업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곧바로 봄방학으로 이어졌다.

이제 3학년이 되면 또 반이 달라지고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질 터였다.

그때 나에게 무슨 감동이 왔는지 종철이를 괴롭힌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그 앞에 서면 혀가 굳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드디어 봄방학식 날이 되었다.

그날에는 꼭 미안했다는 말을 하리라 다짐을 하며 학교에 갔다.

이상했다.

아침 조회 시간이 되도록 종철이가 등교하지 않았다.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담임선생님께서 교실로 들어오셨다.

이제 곧 마지막 수업이 시작될 것이었다.


“너희들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한다.

종철이가 어젯밤에 뺑소니차에 치여 죽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교실에 앉았던 친구들 모두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아직 죽는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나이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선생님은 종철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셨다.

부모님 두 분이 아프셔서 종철이와 그의 누나가 신문배달을 하면서 소년소녀 가장처럼 지내고 있었다고.

어제저녁에 신문배달을 하던 중에 뺑소니차에 치였는데

아직도 가해자를 잡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자꾸만 무너져 갔다.

그동안 종철이를 괴롭혔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가 내던진 가시 돋친 말들이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용서를 구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종철이를 괴롭혔을까?

왜 종철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을까?

왜 종철이의 친구가 되어주지를 못했을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아무런 대답도 얻을 수 없었다.

나 잘난 맛에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야 종철이가 꾀죄죄한 모습으로 학교에 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이해되었다.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던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시험기간이었지만 그 때라도 소설책 한 권 읽고 싶어 했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친구에 몹쓸 짓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서를 구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종철이에게 있었던 그 아름다움을 빨리 발견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했던 것이다.

칼릴 지브란의 제자이자 후원자였던 메리 헤스켈은 <타인의 아름다움>이란 시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으라고 노래하였다.


“타인에게서 가장 좋은 점을 찾아내어 그에게 이야기해 줄래?

우리는 누구에게나 그것이 필요해.

우리는 타인의 칭찬 속에 자라왔어.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었어.


사람은 누구나 위대하고 훌륭하게 타고났어.

아무리 누구를 칭찬해도 지나침은 없어.


타인 속에 있는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길러볼래?

그것을 찾는 대로 그에게 칭찬해줄 마음을 가져보자.”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에 나는 어느 예배당에 엎드려서 종철이에게 잘못했다며 통곡하고 있었다.

그가 나의 사과를 들을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짓누르던 마음의 소리는 떨쳐버려야 했다.

스스로의 독백처럼 용서를 빌고 용서해주는 셀프용서의 시간이라도 필요했다.

계속 죄책감이라는 짐을 지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하늘나라라는 곳이 있다면

종철이가 그곳에 가 있다면

미안했다는 나의 소리를 듣고

괜찮다며 웃어주기를 바랐다.


나중에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종철이를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그의 손을 잡고 정식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너는 참 멋있는 친구였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름을 불러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