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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03. 2021

이름을 불러주세요


나는 아직도 아내를 부를 때 “정아야~”하고 이름을 부른다.

스물세 살 때 만나서 햇수로 6년을 사귀고 결혼해서 지금껏 스무 해가 넘도록 같이 살고 있으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하고 있는 사이이다.

서로의 호칭을 어떻게 할까 고민해 본 적도 있다.

‘자기’라고 할까? ‘여보, 당신’이라고 할까?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아이의 이름을 붙여서 ‘OO엄마’라고 할까? 선택의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나는 그냥 ‘정아’라는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아내를 소개할 때는 ‘아내’라고 하든지 ‘안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우리 집 사람’이라는 표현은 너무 싫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 집 사람’은 부모, 형제, 부부, 자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어서 아내라는 인격체를 존중하는 말로 여겨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부르나 저렇게 부르나 알아듣기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릴 적에 누가 아버지의 이름을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라는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의 이름 석 자를 대면서 “제 아버지 함자는 O자, O자, O자 어른이십니다.”라고 대답하라고 배웠다.

내 아버지가 대단히 위대한 인물은 아닐지라도 아버지를 최대한 높여 드려야 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이름을 잘 불러주는 것이었다.


이 원리는 내가 상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 통용된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박 사장님!”하고 부르는 것보다 “박은석 사장님!”이라고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주는 것이 상대방을 더욱 존중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계급구조가 견고했던 시절에는 하층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이름은 제대로 불리지도 못했다.

아니 불리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이름도 마음대로 지을 수 없었다.

사극을 보면 양반집 하인들의 이름은 죄다 마당쇠, 돌쇠, 떡쇠, 개똥이 등으로 불린다.

이건 그 사람을 전혀 인격체로 대우한 것이 아니다.

‘너는 마당이나 쓰는 놈이고, 너는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센 놈이고, 너는 떡메 잘 칠 것 같은 놈이고, 너는 흔해 빠진 개똥 같은 놈이다.’라는 느낌이 그 이름과 함께 전해진다.


여자들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3월에 태어나면 삼월이, 4월이면 사월이, 5월이면 오월이였다.

꽃이 필 때 나면 꽃네, 뒷간에서 힘을 주다가 불쑥 태어나면 분네였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여주인공 이름은 점순이다.

아마 얼굴에 점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우리나라 지폐 중 가장 비싼 5만 원 권 지폐에 그려진 인물은 5천 원 권 지폐의 인물인 이율곡의 어머니다.

그러니까 이율곡보다 열 배나 더 위대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사임당은 이름이 아니라 그분이 살았던 집의 명칭이다.

뛰어난 화가이며 시인이었고 훌륭한 어머니이자 효녀였던 분이었지만 우리는 그분의 이름조차 모른다.

그 시절에는 여성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인격은 오로지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의 이름에 따라붙는 수식어 정도로만 여겨졌다.

이런 현상은 서양도 비슷하여서 결혼과 동시에 여성의 이름이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한다.

오죽했으면 가수 혜은이가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노래를 했겠는가? 

그래서 나는 다른 것은 잘 못하더라도 아내의 이름만은 자랑스럽게 불러주려고 한다.

“정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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