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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14. 2021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 어떻게 하지?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골목식당에 갔다.

한때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갈 정도로 장사가 잘 되던 식당인데 고작 테이블 하나에 연인 두 명만 앉아 있었다.

다른 식당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자리에 앉아 1인분 식사를 주문했다.

요즘은 혼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나이 젊은 식당 주인은 밑반찬을 깔아주고 공깃밥을 주면서 최대한 밝은 척 했다.

속사정을 들어보면 전혀 밝지 않겠지만 표정이라도 밝게 해야 손님들에게 자기 식당이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테니까 그랬을 것이다.


조금 기다리니 부글부글 끓는 뚝배기가 나왔다.

간을 보니 내 입에 딱 맞았다.

젓가락으로 당면과 버섯을 건져 올리는데 까만 줄이 하나 보였다.

‘뭐지? 설마?’

그렇다!

가늘고 긴 머리카락 한 올이었다.

주방 아주머니의 머리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순간 속에서 뭔가 불끈 솟았다.

‘어떡하지? 잠깐 생각해 보자.’




내가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하면 주인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할 것이다.

얼른 그 음식을 치우고 새로 금방 조리해 주겠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주방에 가서 아주머니에게 한소리 할 것이다.

그러면 주방에 있는 아주머니도 당연히 쩔쩔맬 것이다.

새로 음식이 나오면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젓가락을 들어서 샅샅이 살피게 될 것이다.

음식이 맛이 있는지는 전혀 모른 채 입에 집어넣을 것이다.

계산을 하려고 하면 주인은 미안하다며 음식 값을 안 받겠다고 할 것이다.

나는 카드를 집어넣으면서 말없이 나오고 주인은 내 등 뒤에서 다음에 또 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일상적인 수순이다.


이전에도 그런 방법을 써 보았다.

주위에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했다.

밥장사하는 사람이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호통을 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주인은 할 말이 없다.

그렇게 할까도 생각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전에는 장사가 잘 되었는데 지금은 손님이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있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세상이 흉흉해서 그런 것이다.

임대료는 꼬박꼬박 내고 있을 것이다.

장사를 늦게까지 하고 싶어도 손님도 없고 9시 이후에는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할 수도 없다.

법이 그렇다.

내가 주문한 식사 한 끼는 돈 만원도 안 된다.

그런데 이 음식을 치우고 다시 새롭게 만들고 거기다가 음식 값까지 안 받는다면 꽤 손해가 크다.

장사가 잘 될 때는 ‘그까짓 것 1인분’ 하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하루 매상이 10인분도 안 될 수 있는 때이다.


나의 말 한마디, 얼굴 표정 한 번에 여러 복잡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그만큼 정성을 들여야 하고 신경을 써야 한다.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온다는 것은 큰 실수이다.




결국 좋게 좋게 풀기로 했다.

일단 머리카락은 눈에 잘 보이도록 하얀 냅킨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워낙 긴 머리카락이어서 눈에 안 띌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가고 나면 주인은 테이블을 치우다가 머리카락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그리고 주방 아주머니에게 조용히 조금 더 위생관리에 신경 쓰자고 할 것이다.

1인분 매상은 올렸고 내 얼굴은 잘 모를 테니까 다음에 만난다고 해도 나에게 미안해서 눈치 보지는 않을 것이다.


기분은 좀 께름칙하지만 음식은...... 그냥 먹기로 했다.

‘에이! 배낭여행 왔다고 생각하자. 꼬질꼬질한 길거리음식도 먹는데 머리카락 한 올이 뭐가 대수라고!

‘그냥 집밥 먹는다고 생각하자. 어머니의 머리카락도 여러 올 먹으면서 커왔지 않은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더니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한 그릇 맛있게 잘 먹었다.

포만감에 겨워 기분 좋게 식당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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