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잊히지 않는 특별한 날들이 있다.
먼저 떠오르는 날은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다.
당시에는 일제의 영향으로 국민학교라고 했는데 이는 황국신민학교의 준말이기에 초등학교로 명칭을 바꾼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농촌생활에 부모님과 여유 있게 학교에 가기는 어려웠는지 나는 소꿉친구 여자애와 함께 걸어서 학교에 갔다.
부모님은 나중에 입학식 시간에 맞춰서 학교에 오셨을 것이다.
왼쪽 가슴에는 이름표를 붙이고 그 밑에 하얀 손수건을 달았는데 당시에는 그게 의무사항이었다.
아마 지금처럼 개인위생관리가 철저하지 못했던 때여서 하얀 손수건은 필수였을 것이다.
학교 가는 길에 오줌이 마려워서 우리 둘은 시골길 모퉁이에서 나란히 오줌을 누고 갔다.
선생님은 올망졸망한 새내기들을 운동장에 열 지어 세웠는데 내가 동급생들 중에서 제일 키가 컸었기에 맨 뒤에 섰다.
이것까지만 기억이 난다.
중학교 졸업식은 어떻게 치렀는지 모르겠다.
상장은 하나도 못 받았다.
그저 그런 날일 수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졸업식 구경을 오셨다.
선생님과 그리고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학교를 나오는데 아버지께서 계셨다.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는 모른다.
단지 아버지께서 밥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사춘기의 절정에 있었는데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적이 별로 없었다.
속으로는 좋으면서 표정관리가 잘 안 되었다.
쭈뼛쭈뼛 따라갔는데 아버지는 앞장서서 어느 중국집에 들어갔다.
기분이 째지게 좋았다.
메뉴를 물어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중국집에서는 무조건 짜장면이었다.
동네에 중국집 하나 없었기에 짜장면을 먹으려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만 했다.
가격은 500원인가 했던 것 같은데 가격이 어땠든지 간에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1년에 한두 번 될까 말까 했다.
살면서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느낀 몇 안 되는 날이었다.
이렇게 오래전 기억은 가물에 콩 나듯 하나씩 떠오르는데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은 기억은 무더기로 튀어나온다.
그래도 식구들과의 특별한 날은 잊을 수 없다.
아내에게 사랑고백을 하며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10월 17일의 가을날.
그 어간에 학교 동산에 앉아 있었는데 하늘에서 우리의 사랑을 질투하셨는지 도토리 한 알이 뚝 떨어졌다.
그 도토리 한 알 주워서 건네줬는데 지금도 우리 집 추억의 상자에 있을 것이다.
기나 긴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린 7월 3일.
6년의 기다림 끝에 기적처럼 딸을 낳은 8월 13일.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양수가 다 빠져서 꼬박 이틀을 고생하고 제왕절개로 낳았는데 솔직히 딸을 처음 보는 순간, 기쁨보다는 아내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서 어쩔 줄 몰랐다.
해외에 나가 있었기에 전화상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5월 7일.
출산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은 평생 지울 수가 없다.
새 달력을 받으면 맨 먼저 가정의 특별한 날들을 찾아 동그라미 표시를 한다.
그런데 내가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특별한 날은 아니다.
사실 1년 365일이 다 똑같은 무게감을 지닌 동등한 날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내가 한 날을 택해서 의미를 부여하면 그날은 그 순간부터 나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 되는 것이다.
이 원리는 다른 경우에도 들어맞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지만 그중의 어느 한 사람을 특별하게 대한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여러 물건이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귀하게 여기면 그 물건은 나에게 특별한 물건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씻고 식사를 하다가 오늘도 똑같은 날이 되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아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라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오늘이라는 날에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이날은 내 인생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오늘이라는 날에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이날은 내 인생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