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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읽고 산다
나를 가르쳐주신 책 선생님들
by
박은석
Feb 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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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숨이 멎을 때까지 일평생 배우며 살아간다.
갓난아기 때는 울음보를 터드리면서 부모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운다.
체하고 배탈이 나면서 먹거리의 적당량을 배우고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 걸음마를 배운다.
가갸거겨 한글을 배워서 읽고 쓰는 즐거움을 배우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람 사귀는 방법을 배운다.
선생님에게서도 배우고 제자에게서도 배운다.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은 가풍이 되고 아들딸에게서 배운 것은 신식 정보가 된다.
‘이 나이에 배워서 어디에 쓰려고...’ 하면서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려면 제 때에 적절하게 배워야 한다.
배우는 게 싫다며 ‘조선 시대의 왕들은 얼마나 편했을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왕의 일상을 모르는 무식한 생각이다.
조선의 왕들도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한밤중에 공부하고 신하들에게 점검을 받았다.
배우기 위해서 꼭 학교에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것들이 더 많을 수 있다.
나의 경우를 돌아보더라도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배운 것보다 다른 데서 배운 것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그 성함 정도는 당연히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에 꽤 오랫동안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나옥순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이름 석 자를 제대로 기억하는 선생님이 없다.
내 머리가 엄청 나쁘기는 한가 보다.
학교 선생님들 말고도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이 여러분 계시다.
그분들은 아마 당신이 나를 가르치셨는지 기억도 못 하실 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분들의 성함을 잊지 못한다.
내가 직접 만나서 배우지도 않았고 그분들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다.
그런데 그분들의 가르침은 또렷하다.
그분들은 바로 나의 책 선생님들이시다.
내 책 선생님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은 박완서 선생님이다.
마흔 살에 글쓰기를 시작하셨다는 말씀에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 시작하면 된다는 진리를 얻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날들이 곧 역사라는 식으로 당신이 겪은 일들을 솔직담백하게 써 내려간 글들 속에서 나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의 소시민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최명희 선생님의 책은 비록 <혼불> 한 세트밖에 못 읽었지만 우리의 세시풍속과 그에 얽힌 우리 조상들의 다양한 애환들을 배울 수 있었다.
조정래 선생과 황석영 선생의 책은 나에게 ‘내가 대한의 사람이 맞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게 만들었다.
우리 선조들의 삶을 반추해보면서 그들의 눈물에 함께 울고 그들의 희망에 함께 희망을 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마지막 장을 덮으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게 만들었다.
백석과 윤동주와 김소월을 읽으며 그들이 거쳐간 오산학교를 떠올렸고, 오산학교를 세우고 운영한 남강 이승훈 선생과 고당 조만식 선생을 생각하였다.
또 그분들을 엮은 민족의식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함석헌 선생을 알게 되었다.
김훈 선생처럼 남한산성을 손으로 만져보며 걸어보니 조상들의 숨결과 눈물이 느껴지는 것 같았고, 조정래 선생의 마음을 헤아리며 아리랑을 불러보니 이전에 부르던 아리랑과는 느낌이 달랐다.
내가 특별히 민족을 생각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가르쳐준 책 선생님들은 나에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라고 조용히 외치신다.
그리고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과 한숨을 견뎠는지 아느냐고 물으신다.
그러면서 나에게 나의 역사를 만들어가라고 다독여주신다.
너무나 고마운 나의 책 선생님들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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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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