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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02. 2021

살아오면서 한순간도 넉넉했던 적이 없었다


살아오면서 한순간도 넉넉했던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 내가 두 살 때 아버지는 누군가의 보증을 섰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홀라당 전 재산을 날리셨다.

그 후에는 반미치광이처럼 전국을 헤매며 그놈을 찾아다니셨다고 한다.

결국은 찾으셨다.

하지만 아무것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하셨다.


다시 맨손으로 시작하는 기분이 어떠셨을까?

빠른 시간에 회복하고자 몰래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셨다.

불법체류자는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곧 붙잡히셨고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넘겨지셨다.

그리고 한동안 감옥 안에서 지내셨다.

그동안 식구들은 아버지의 부재라는 결핍을 겪어야만 했다.


집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땅도 팔리고 말, 소, 돼지, 닭 등 가축들도 한 마리씩 사라졌다.

아버지의 건강도 약해졌고 힘도 약해졌다.

넉넉하지 못한 현실은 우리 6남매의 꿈과 희망도 앗아가 버렸다.




이불 뒤집어쓰고 끙끙거리며 넉넉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했다.

쓸 만큼 돈도 있고, 가족들이 아프지도 않고, 고정적인 수입이 있고, 인간관계도 편안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늘 조금씩, 아니 많이 부족했다.

부족한 게 보이면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견디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건 그 사람들의 인생이고 나는 나의 인생으로 힘들어했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가망성이 없어서 저 세상에 대한 기대를 걸기도 했다.

친구들보다 더 종교적인 열심을 냈던 것도 그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책을 보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들 이야기가 눈에 쏙쏙 들어왔다.

세상 그 누구든지 간에 무엇인가 부족한 게 있다.

넉넉한 사람은 없다.

멕시코 마약왕 에스코바르는 장작이 없어서 추워하는 딸을 위해 100달러짜리 지폐 뭉치로 난로를 땠다고 하지 않는가?




서울 쥐가 나을까 시골 쥐가 나을까?

왕자의 삶이 나을까 거지의 삶이 나을까?

서울 쥐도, 시골쥐도, 왕자도, 거지도 다 자기 삶이 맘에 안 들어서 바꿔보자고 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게 항상 부족한 것을 메꾸면서 사는 것이다.

하나를 막으면 또 하나가 터진다.

돌려 막고 돌려 막고 평생 돌려 막기 인생 같다.

처음이 힘들지 몇 번 하다 보면 돌려 막는 것도 익숙해진다.

요령도 생기고 기막힌 방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바다를 볼 수 없는 내륙 깊숙한 곳에서는 생선을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그 부족한 생선이 먹고 싶어서 궁리를 하고 머리를 짜내다 보니 간고등어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싶은데 고기는 이미 다 먹어버린 상태라 아쉽지만 뼈다귀에 붙어 있는 살점이라도 뜯어먹으려고 물에 푹 삶았다.

그랬더니 영양 가득한 사골국물이 탄생했다.

부족한 것 메꾸려다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것을 얻어냈다.




유명한 성당에 가 보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들어오는 빛이 찬란하다.

어떻게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사실은 유리가 부족해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냈다고 한다.

커다란 통유리를 만들기 어렵던 시절이어서 그랬다.

기술력이 부족하고 물자가 부족해서 작은 유리들을 이어 붙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그게 더 멋드러진 작품이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인류의 문명은 부족한 것을 해결하면서 발전했다.

결핍은 창조의 바탕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족하다는 게 좋다는 말이 아니다.

부족하면 불편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부족한 상황을 마냥 불평할 수만은 없다.

부족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든지 메꿔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또 그런대로 살 수가 있다.


살아오면서 한순간도 넉넉했던 적이 없지만 한순간도 살지 못했던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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