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린아이인데 몸이..

by 박은석


저 멀리 횡단보도에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깜빡거린다.

뛰자.

충분할 것 같다.

그런데 몇 걸음 뛰고 나니 무릎이 아프다.

‘아직은 아닐 거야. 갑자기 뛰어서 그래. 스트레칭 좀 하면 다시 100미터를 12초대로 뛸 수 있어.

그게 내 실력이야!’

마음을 추슬러본다.


내가 누군가?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높이뛰기 선수였다.

중학생 때는 육상부 선수들과 어울려 이어달리기를 했다.

축구 골키퍼를 하면서 맨바닥에 몸을 날렸다.

팔다리에는 찰과상이 남았지만 골은 막았던 사람이다.

고등학생 때는 도 대표와 맞짱 뜨면서 탁구를 쳤다.

물론 21점 게임에서 11점 정도 얻은 게 고작이지만 포레스트 검프처럼 혼자 벽 보면서 탁구를 배웠던 나로서는 괜찮은 점수였다.

대학생 때는 학과별 핸드볼 대회에서 펄펄 날았었다.

핸드볼부에서 같이 운동하자는 제안을 받고 매몰차게 거절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군대에서는 배구선수로 깜짝 변신도 했다.




뭐 하나 제대로 배운 것은 없지만 내 몸이 가볍다는 것으로 ‘하면 된다’를 진리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절대 그때처럼 뛸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밤늦은 시간에 영화나 한 편 볼까 생각했다가 금세 접었다.

한두 시간 즐겁게 보내자고 하루를 망칠 수는 없다.

몸을 아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적당히 먹어야 한다.

돈 아깝다며 실컷 먹었다가 저녁 내내 속 거북하게 지낼 수는 없다.

몸을 생각해야 한다.

몸 걱정을 하는 내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거라고 들어왔고 말을 해왔지만 어디 그런가?

몸 자랑한다고 라면 다섯 개를 끓여 먹고 끄억 끄억 트림을 해댔던 때가 있었다.

밤새도록 잠 안 자고 딴짓하면서 시간을 축냈던 시절도 있었다.

언젠간 가겠지 했는데 벌써 가버린 푸르른 청춘이었다.




몇 년 전에 꽃 축제장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한 부류의 아주머니들이 긴 줄을 돌리면서 “꼬마야 꼬마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렸을 때 잘했던 놀이라면서 깔깔거리고들 계셨다.

그중의 한 분이 직접 뛰겠다며 줄로 달려드셨다.

걸렸다!

다시 한 번 시도하셨다.

또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은 펄쩍 뛰는 흉내를 내셨는데 발이 땅에 붙어 있었다.


줄 돌리는 친구에게 일부러 자기를 걸리게 하는 거 아니냐고, 줄 좀 잘 돌리라고 큰소리를 치셨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줄 돌리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것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 사람은 안다.

자기는 분명히 뛰었다고 하는데 뛰지 못했다.

발은 여전히 땅에 붙은 채 입으로만 펄쩍 뛰었다.

그분도 속으로는 열 살 소녀시절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 키보다 높은 고무줄도 땅에 손을 짚고 공중으로 발차기를 하면서 잡았던 그때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변해간다 변해간다 해도 나는 변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것들은 안 변하고 나만 변한 것 같다.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노랫소리가 들리면 속으로 함께 따라 부른다.

마치 내가 그때로 돌아간 듯 말이다.

그때는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프루스트는 <자작나무>라는 시에서 나뭇가지를 잡고 뛰놀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몸은 돌아갈 수 없어도 마음은 수도 없이 갔다 올 수 있다.

내 마음속에는 그때의 꼬마가, 중고등학생이, 청년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어린아이인데 몸이...’하면서 후회하지 말자.

마음에 어린아이가 있고 몸이 어른이라면 원하는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다.

그때는 어른이 부러웠고 지금은 아이가 부러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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