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의 지배를 받고 살아간다.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 밖으로 나오면 말과 글이 된다.
마음속의 생각이 그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고 삶의 태도로 굳어진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생각은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도 영향을 끼친다.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처방을 내리기 전에 종종 “마음을 편안하게 하세요. 좋은 마음을 품으세요.”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마음이 편안해야 몸도 편안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몸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싼 보약을 달여 마셔도 마음이 불편하면 말짱 꽝이다.
우리는 사람의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마음이 편안한지 불안한지 좋은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안 좋은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사람은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마음을 품으려고 작심을 해도 잘 안 될 때가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자고,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사람을 대하자고 다짐을 하다가도 내 앞에 폭주족들이 굉음을 지르고 지나가면 저절로 욕이 튀어나온다.
열심히 노력을 해도 성적이 안 나오고 결과가 안 좋을 때는 마음이 먼저 고개를 숙인다.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만나면 손을 놔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내 앞을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
그 벽을 뚫고 지나갈 수가 없을 것만 같다.
그 앞에 주저앉아서 궁리를 하지만 도통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속에서는 ‘안 될 거야! 안 될 거야!’라는 소리가 메아리를 친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도 그런 벽을 맞닥뜨렸다.
그런데 그때 그는 그 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를 보았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는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벽을 뚫고 가는 것만 방법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벽을 넘어서 가는 것도 방법이지 않은가?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내 힘으로는 그 벽을 움직일 수도 없앨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벽 앞에서의 내 마음은 내가 조절할 수 있다.
어차피 둘 중의 하나다.
‘안 될 거야!’와 ‘잘 될 거야!’다.
상황이 똑같듯이 글자 수도 네 글자로 같다.
단지 한 글자 차이다.
하지만 이 한 글자 차이의 마음이 극과 극을 이룬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괜한 시간 낭비라고 한다.
하지만 잘 될 거라고 생각하면 또 다른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또 다른 시도라고 한다.
그러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사실 단점과 장점은 똑같은 상황 아래에서 만들어진다.
자신의 단점을 잘 극복하면 그게 큰 장점이 된다.
반면에 너무나 좋은 장점인데도 그것을 잘못 사용하면 큰 단점이 된다.
발명왕 에디슨은 어렸을 적에 귀를 크게 다쳐서 일평생 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잘 듣지 못한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딴 소리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단점까지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에디슨이 처음부터 그렇게 좋은 마음을 품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불안하고 속상하고 열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탓하지 않고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갔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걸어두면서 숱한 시간을 겪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단점을 장점이 되게 만든 것이다.
오늘도 내 마음은 ‘안 될 거야!’와 ‘잘 될 거야!’의 두 가지 선택지를 내민다.
상황은 똑같다.
조심스럽게 그중의 하나를 집어 들어야 한다.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다.
선택은 오직 내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