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빛이 다 햇빛이다

by 박은석


비 온 뒤 파란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빨주노초파남보의 그 빛깔이 너무나 화려하다.

둥그런 아치 모양이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대문처럼 보인다.

조금만 가면 저 문에 도착할 것 같아서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저기는 여기와는 다른 곳일 것처럼 보였다.

무지개 너머에는 저 화려한 빛깔만큼이나 찬란한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다.

특히 좀 힘든 일이 있었을 때는 더더욱 무지개 너머로 가고 싶었다.

나 혼자만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가졌을 꿈이다.


독일의 시인이 칼 부세(Carl Hermann Busse, 1872~1918)도 그렇게 노래했다.


“산 너머 고개 너머 먼 하늘에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아! 나도 남 따라 찾아갔건만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네

산 너머 고개 너머 더욱더 멀리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무지개는 태양 빛이 반사되고 굴절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학교 선생님이 말씀해주시는 순간 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무지개를 보면서 꿈이라도 꿀 수 있었는데 선생님은 매몰차게 그것은 빛이 물방울을 통과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고 하셨다.

그것을 직접 보여주시겠다면서 프리즘이라는 것을 가지고 오셔서 빛을 비춰주셨다.

아! 그때 내 눈앞에 빛의 색깔들이 쫘악 펼쳐졌다.

“봐라, 봐! 여기 빨주노초파남보!”

자뭇 승리감에 도취된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무지개 빛깔은 7빛깔이 아니었다.

빨간빛만 보더라도 진한 빨강에서 옅은 빨강으로 다양한 빛깔이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빛깔이 변하면서 다른 빛깔과 어울리고 있었다.

그냥 밝다고만 생각했던 태양빛 안에 이렇게 여러 빛깔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여럿이 모여서 하나가 되고 하나가 또 여럿으로 나누어지는 빛의 존재는 참 신기하였다.

합쳐지면 밝은색 하나가 된다고 하니 나도 따라서 그려보았다.

7색깔 물감으로 도화지에 덧칠을 해 보았다.

어럽쇼?!

색깔을 칠하면 칠할수록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

아무리 밝게 하려고 흰색을 섞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칠한 색깔들은 결국 시커먼 자국만 남겼다.

욕심이었을까?

내 맘대로 색을 만들어보려던 욕심이었다.

색은 빛과 다르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비슷한 듯 다른데 왜 나는 비슷한 구석이 하나라도 보이면 같다고 생각을 해버릴까?


사람을 대할 때도 그래왔다.

“내가 잘 아는데 저 사람은 그래!”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인데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빛으로 봐 왔던 게 아니고 내가 이리저리 조작할 수 있는 색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이제는 무지개빛깔이 몇 개냐는 질문에 7빛깔이라고 선뜻 대답하지 않는다.

무지개 안에 너무나 많은 빛깔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태양은 무슨 빛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밝은 빛이라고 한다.

빛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빛은 그냥 빛이다.

무슨 빛이 따로 없다.

괜히 우리가 만들어낸 색깔들을 빛 앞에 덧붙이면 더 이상해진다.

초록색 빛, 노란색 빛, 빨간색 빛이란 말은 색깔인지 빛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빛은 그 자체로 그냥 빛이다.

그냥 밝음이라고 표현하면 된다.


오늘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도 빛과 같은 사람들이다.

괜히 그 사람이 무슨 빛일까 평가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사람을 빛처럼 받아들이면 된다.

세상의 모든 빛이 다 햇빛이다.

흩어지면 다양한 빛깔로 보이고 모이면 하나의 밝음이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도 그렇다.

혼자 있으면 제각각의 삶이고 다 모이면 하나의 인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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