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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벅찬 오늘 하루
‘오늘’이라는 위대한 날
by
박은석
Ap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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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갠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부자리를 갠다고 했다.
정리 정돈을 잘 하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이부자리를 갰는데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내 잠자리는 내가 정리한다.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할 때마다 살짝 아쉬움이 인다.
남자들만의 로망이 있다.
수염을 기르고 싶은 거다.
구레나룻!
캬! 멋질 것 같은데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다.
하루만 면도를 안 해도 덥수룩해지는 얼굴인데 휴가철에나 게으름을 피워서 이삼일 길렀었고, 지리산 종주를 할 때 산에서 자느라고 면도를 못 했던 날 외에는 여지없이 면도기를 들이민다.
나는 깔끔하게 보여야 하는 사람이다.
결혼하고부터 달라진 것 중의 하나는 머리에 뭘 바른다는 거다.
장인께서 “젊은 사람은 머리에 뭘 바르는 게 좋은 것 같아.”
그 한마디 말씀을 듣고 나서 지금껏 헤어젤을 바른다.
와이셔츠는 주로 하얀색을 택한다.
하기는 원래부터 이 옷은 화이트 셔츠(White Shirt)였다.
우리보다 일찍 서구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인들이 화이트 셔츠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와이셔츠’가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이건 사실 같다.
‘일본?’ 하고 생각하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넥타이는 그날의 분위기에 맞는 색으로 졸라맨다.
넥타이 색깔 맞추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나처럼 사무직에 있는 사람은 넥타이 색깔로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숱한 도움을 받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미술에는 젬병이었다.
옆에서 조언을 해 준 사람들 덕에 이제는 능수능란하게 되었다.
까만색 구두는 가장 무난하면서도 가장 격식 있는 신발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까만색 구두다.
길을 걸어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이어폰을 꽂고 오디오북을 듣는다.
아니면 음악.
그렇게 하루의 일상을 시작한다.
사무실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나면 피로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몰려온다.
집에 와서 잠시 멍 때리기 하다가 저녁식사를 하고 바깥이 깜깜해질 때를 기다려 아들과 함께 농구장으로 간다.
어둠이 우리의 얼굴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뭐 다정다감한 부자지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이거라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운동과는 담을 쌓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던지고 나는 옆에서 코치 노릇을 한다.
언젠가 아들이 지 엄마한테 소곤댔다.
“아빠는 자기도 골을 잘 못 넣으면서 나한테만 이래라저래라 해.” 그 말을 듣고 내가 살짝 째려보기는 했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나도 잘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던지는 족족 3점 슛이다.
그런데 내 손은 머리와 따로 논다.
집에 다시 들어와서 씻고 이부자리를 깐다.
아침에 갰었던 그 자리 그 위치에 가지런히 깐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보면 하루라는 시간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매일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이불속에서 일어나서 무엇인가 꼼지락거리다가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그 깔아놓은 이부자리가 이 분의 자리가 되고 나의 자리가 된다.
그 자리로 돌아오는 게 일상의 완성이다.
그래서 우리 옛 어른들이 밥은 아무 데서나 먹어도 잠은 한 곳에서 자라고 했던 것 같다.
하루의 삶이 마치 둥그런 원을 그리듯이 뱅 돌아서 그 자리로 돌아와야 안정이 되고 완성이 된다.
어제가 그제 같고 그제가 오늘 같은 날이라고 허무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이라고만 보지 말고 매일 하루라는 일을 완성시킨다고 생각하면 좀 달라 보일 것이다.
언젠가는 이 일상의 하루를 완성시키지 못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우리가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오늘이라는 이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위대한 날이었던가 하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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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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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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