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 가옥에는 방에 들어가는 문을 대부분 좌우로 밀면서 열고 닫을 수 있는 ‘미닫이문’으로 만들었다.
물론 집의 대문이나 곳간의 문처럼 밀고 당기는 방식인 ‘여닫이문’도 있었지만 주로 집 안에서 방과 방 사이를 구분하는 문은 미닫이문이었다.
미닫이문은 왼쪽과 오른쪽으로 문의 경계를 삼는 문설주를 세우고 그 두 문설주 위쪽을 연결하여 ‘인방’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양쪽 문설주의 아래쪽에는 ‘문지방’이라는 나무를 가로 놓았다.
이렇게 좌우 문설주와 위쪽의 인방, 그리고 아래쪽의 문지방을 연결하여 네모반듯하게 문틀이 만들어지면 그 안에 문짝을 집어넣었다.
이때 문짝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문인방과 문지방에는 문짝의 두께에 알맞게 길게 홈을 팠다.
그 홈에 두 장의 문짝을 엇갈리게 올려놓으면 미닫이문 하나가 완성되었다.
보통 한쪽 문은 닫고 다른 한쪽으로만 열었는데 필요할 때는 양쪽 다 열어서 넓게 쓸 수 있었다.
특별히 문지방의 윗부분으로서 문짝과 닿는 부위를 ‘문턱’이라고 불렀다.
문 때문에 평평한 방바닥에 장애물과도 같은 턱이 하나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마루에서 안방이나 사랑방으로 혹은 건넌방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문을 열고 문턱을 넘어가야만 했다.
문턱은 방과 방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선이었다.
비록 보잘것없는 아주 작은 선이지만 경계선은 매우 중요하다.
경계선에 따라 공간이 달라진다.
경계선이 반듯하면 공간도 반듯하고 경계선이 이지러지면 공간도 이지러진다.
집 안의 경계선과 같은 문턱이 반듯하면 문짝이 안정되고 각 방과 건물 전체가 튼튼해진다.
하지만 문턱이 망가지면 문짝이 부서지고 방이 어지러워진다.
심한 경우에는 집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도 다친다.
그래서 행여 아이들이 문턱을 밟으면 어른들은 당장 내려오라며 야단을 쳤었다.
문턱은 밟는 게 아니라 살짝 넘어가는 것이었다.
문턱은 또한 이 방에 저 방으로의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시작선이다.
다른 방에 들어가는 행위는 문턱에서부터 시작된다.
문턱을 넘는다는 말은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되어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뜻까지 지니게 되었다.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계속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간다.
처음 생명을 갖게 되었을 때에는 엄마 뱃속이라는 세상이었지만 그곳에서 나와서 부모형제와 어우러지는 가정이라는 세상에 들어선다.
그리고 계속해서 또래 친구들의 세상, 학교와 직장이라는 더 넓은 세상들 속으로 들어간다.
인생은 끊임없이 문턱을 넘는 과정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공간에 들어간다.
그때마다 새로운 문턱을 넘는다.
어린아이가 넘기에는 조금 높은 문턱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러면 아이는 그 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앞에서 망설일 수만은 없다.
문턱을 밟지 않으려면 힘껏 뛰어넘어야 한다.
기원전 50년에 로마의 장군 카이사르는 루비콘강이라는 문턱을 만났다.
생사가 걸린 엄청난 문턱이었다.
생사가 걸린 일이었다.
그 앞에서 그는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며 여러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주사위놀이를 하며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힘껏 루비콘의 문턱을 뛰어넘었다.
그 결과 로마제국이라는 엄청난 세상을 얻었다.
공자는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15세, 30세, 40세, 50세, 60세, 70세에 자신이 넘은 문턱들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었다.
그 어느 것 하나 결코 쉽게 넘을 수 있는 문턱들은 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넘어야 했기에 그는 힘껏 뛰어넘었다.
우리 앞에는 분명 우리가 넘어야 할 우리만의 문턱이 있다.
평생을 방 안에 갇혀 지낼 수는 없다.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문턱을 넘어야 한다.
망설이고 서성거린 시간은 지금까지로 충분하다.
어차피 넘어야 할 문턱이라면 마음을 강하게 먹고 힘껏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