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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22. 2021

내 생일이 세 개가 되어버렸다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하더라도 시골에서는 생일을 양력으로 지키기보다 음력으로 지키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국가에서 양력을 강조하더라도 농사를 지어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양력보다 음력으로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훨씬 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마을운동이다 뭐다 해서 아침 6시면 동사무소의 확성기에서 “새벽종이 울리네 새아침이 밝았네” 노래가 흘러나왔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를 구호처럼 외치던 시절이었다.

먹을 것도 없는데 아이들만 많이 으면 안 된다며 잘 살려면 가족계획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예비군훈련을 가면 따로 한쪽으로 불러서 훈련에서 빠질 방법이 있다며 귀띔을 해주곤 했다.

그 말에 혹 해서 거시기를 묶고 집으로 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자식 농사가 인생 농사라며 눈치를 주시는 조상님들도 계셨다.

아들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며 아들 낳기까지는 맘 편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내 어머니도 그러셨을 것이다.

딸, 딸, 딸을 낳으시고도 포기하지 못하셨다.

아들이 뭔지.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기도를 하셨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기도를 하셨다.

이번에 배에 들어찬 아이는 사내아이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날짜도 기억하기 좋게 석가탄신일 다음다음날인 음력 4월 10일에 드디어 내가 태어났다.

할머니는 좋아라 하셨을 것이고 어머니는 이제 숙제 하나 끝났다 싶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하면서 하루하루 지켜보셨다.

시절이 좋아졌다지만 유아기를 무사히 지나지 못하는 아기들도 있었다.

이제 됐다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동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를 하셨다.

음력 4월 10일 출생, 이름은 박은석.

그렇게 신고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집에서는 해마다 음력 4월 10일이면 내 생일이라고, 귀빠진 날이라고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아버지는 미역국은 자식을 낳은 어미가 먹는 것이라며 어머니에게 감사하라고 하셨다.




내 생일이 4월 10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학교에 입학해서야 알았다.

주민등록등본에 나온 기록대로 정리되어 있는 나의 정보에서 내 생일은 4월 2일이었다.

어찌된 영문일까?

아버지는 내 출생신고를 분명 4월 10일이라고 하셨다는데 동사무소 직원이 잘못 적어서 그랬다고만 하셨다.

그러려니 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생일 며칠 바뀐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한 해 밀려 쓰인 경우도 있었고 올려 쓰인 경우도 있었다.

이름이 아예 바뀐 이들도 있었다.


지금처럼 아기 적에 병원에라도 자주 갔었더라면 신분증을 볼 기회가 있어서 어떻게 조처를 취했을 텐데 까마득하게 모르다가 학교에 입학할 때에야 알게 된 것이다.

동사무소에 가서 따질 수도 없었다.

그래도 관청이라고 그 위세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기록을 바꾸려면 또 돈이 든다고 했는데 그 비싼 돈 들이면서 별것도 아닌 숫자와 글 한 자 바꾸느니 차라리 그냥 지내도 된다고 했다.




스무 살 이후 서울물을 마시면서부터는 음력 생일이 점점 불편해졌다.

모든 기록들이 양력으로 정리되는 시대에 나 자신만을 위해서 음력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도 미안했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났을 때 나의 출생의 비밀을 찾아보았다.

내가 태어난 해의 음력 4월 10일을 찾아보니 양력 5월 22일이었다.

‘그래 바꾸자! 다시 태어나는 거다!’

그래서 그때부터 집안에서는 5월 22일로 생일을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여전히 음력 4월 10일인 초파일 다음다음날로 기억하실 것이다.

당신 배에서 낳은 자식 날짜를 모르실 수가 없다.

어제 있었던 일처럼 시간까지 정확히 아실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께 내 생일을 바꾸겠다고 말씀드렸었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다.

생일은 나의 날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날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내 생일은 세 개가 되었다.

음력 4월 10일, 4월 2일, 양력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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