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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26. 2021

나는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

나를 소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가 있다.

말로 할 수도 있는데 글을 써서 알릴 때가 있다.

요즘도 종종 자기소개서를 쓴다.

자기소개서에도 일정한 양식이 있다.

그중에서 제일 곤란한 부분이 내 성격의 장점과 단점을 쓰라는 항목이다.

내 성격을 어떻게 몇 줄 문장으로 알릴 수 있을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성격이다.

간혹 ‘나에게 이런 면도 있었나?’ 하면서 나 자신도 놀라는 경우도 있다.


성격유형검사라는 도구가 있어서 그나마 도움이 된다.

내 성격유형은 MBTI 검사에 따르면 ESFJ유형이다.

알 사람은 안다.

하지만 몰라도 괜찮다.

외향적이고, 감각이 뛰어나고, 감성이 풍부하며, 계획을 잘 세우는 유형이다.

친선도모형, 분위기 메이커, 남 좋은 일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맞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내 맘속에 도사리고 있는 능구렁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나도 내성적이고, 무감각하며, 감정이 메마르고,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으로 일처리를 한다.

MBTI의 성격유형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띨 때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했다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른다.

그러면서도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려고 한다.

“그 사람은 그래.”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고작 몇 번 보고 들은 경험을 가지고 너무나 쉽게 평가해버린다.


사람은 점과 선으로 그어진 1차원의 존재도 아니며 넓적한 면을 이루는 2차원의 존재도 아니다.

앞뒤 좌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3차원의 존재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을 가진 4차원 혹은 무한히 뻗어나가는 N차원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내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받으면 “나를 만만하게 보지 마!”라고 큰소리치나 보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자꾸 나 자신을 단순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특히 어떤 실수를 저질렀을 때는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나온다.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렇다.


만약 그런 사람이 나보다 연장자이거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유명세가 있는 사람일 때는 더욱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저 사람이 나를 그렇게 평가하는 것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겠지?’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그동안 내 주제를 파악하지 못했어.’라는 생각 속에 나를 집어넣는다.

말도 안 되는 상상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만다.

긍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부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의 감옥을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든 최초의 원인을 찾아가 보면 단 한 사람이었다.

열 사람 중의 한 사람, 백 사람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 한 사람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면을 보는 것도 아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었더라도 경험하는 것이 다 제각각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 사람이 목소리를 크게 외치면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줄 안다.

제발 이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태어나서 갓 돌이 된 아기도 1년 365일 매일매일 달랐다.

똑같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러니까 30년을 살아온 사람을 알려면 30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이 이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나를 소개하는 것은 엄청나게 위대한 일이다.

몇 줄 문장으로 표현할 수가 없다.

평생을 걸쳐서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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