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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25. 2021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너무나도 잘 알려진 포은 정몽주의 시조 단심가(丹心歌)이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하여가(何如歌)’로 유혹하며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고 했을 때, 정몽주는 이 노래로 답하였다.

자신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싶은 게 아니라 오직 고려에 대한 충성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대답이 나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상대가 이방원이다.

이성계의 부탁을 받아 오랫동안 자기 조카처럼 돌보고 아꼈던 사람이다.

데리고 다니면서 여러 인사들에게 이성계의 아들인데 참 똑똑하고 용맹한 젊은이라고 소개도 많이 했을 것이다.

이방원이 아마 “삼촌, 지금 고려는 끝났으니 저희와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보십시다.”라며 제안했을 것이다.




그 제안을 받고 대답을 하기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몽주는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신도 눈이 있어서 보는 게 있고 귀가 있어서 듣는 게 있다.

고려는 끝나가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자신이 막으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걸리적거리는 돌은 뽑혀서 던져진다.

던져지지 않으려면 몸을 낮추고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해야 한다.


두 개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만 뽑을 수 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그토록 많이 메아리쳤던 소리가 그때에도 울렸다.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정몽주는 뒤의 것을 택했다.

후세의 사람들은 선죽교에서 이방원에 의해서 혹은 이방원이 숨겨놓은 자객들에 의해서 정몽주가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몽주는 이방원을 만났을 때 이미 죽었다.

백번을 태어나고 죽더라도 정몽주는 고려의 사람이기에 고려와 함께 그의 삶도 저물었다.




정몽주의 목숨을 앗아간 조선에서 그를 높이 기렸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비록 가는 길은 달랐지만 충과 효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던 조선에서 볼 때, 정몽주의 일편단심은 큰 교훈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십대 사춘기 때에도, 이십대 청년의 때에도, 심지어 노년의 때에도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이 질문에 납득할만한 자신만의 답변을 갖지 못한다면 이 물음은 끊임없이 우리 마음에 맴돌게 된다.

그러다가 자신만의 해답을 깨달았을 때 마치 천지가 개벽하듯이 모든 것이 환하게 밝아지며 “유레카(찾았다)!”라고 외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정몽주는 일찌감치 자신이 누구인지 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았던 사람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그것만의 존재 의미가 있다.

다른 것으로는 그것을 대체할 수가 없다.

모양이 똑같다고 해서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는 수십 자루의 볼펜이 있지만 다 같은 볼펜이 아니다.

내 손이 더 자주 가는 볼펜이 있고, 1년에 한 번도 닿지 않는 볼펜이 있다.

사연이 있는 볼펜이 있고 어디서 굴러온 볼펜도 있다.

그것들의 의미가 다 다르다.


사람도 그러하다.

전 세계에 80억의 인구가 있으니 나 하나 없어지더라도 세상은 알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80억 명 중에서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려 말에도 고려의 충신들은 많았다.

하지만 포은 정몽주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아무도 그를 대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한 사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정몽주를 잃은 것이다.


어디 정몽주뿐이겠는가?

나도 그렇다.

나를 잃는 것은 세상을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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