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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01. 2021

우리 집 경제 사정은 신기하다

 

우리 집의 경제적인 상황은 일정한 패턴을 그린다.

좀 여유가 있을 것 같으면 무슨 일들이 일어나서 모아놓은 그만큼 빠져나간다.

또 좀 부족할 것 같으면 딱 부족한 만큼 수입이 들어와 손익분기점이 맞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큰아이 보험료 납부도 끝났고 둘째아이 학원도 쉬고 해서 좀 여유가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집 공사를 하는 바람에 피난민 신세를 졌다.

이래저래 나가는 게 많았다.

식구들이 줄줄이 잔병치레도 했다.

치과도 가고 안과도 가고 내과도 가고 정형외과도 다녀왔다.

그런가 하면 지난주에는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앞타이어 두 개를 바꿨다.

사람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아들의 아이폰이 다시 깨졌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손이 정말 기름손인지, 아니면 새로운 폰을 원해서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이번이 마지막 수리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이제는 통하지도 않는다.




아내는 가계부를 꺼내놓고 이제는 기대도 안 한다고 한다.

좀 모여지나 생각하면 고스란히 나가니까 돈이 들어오면 이번에는 무슨 문제가 생기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러게, 돈 많이 버는 남자를 만났어야 하는데 하고, 많은 남자 중에서 나를 만나 고생이다.

사실 대학 시절 아내를 좋아했던 남자들이 여럿 있었다.

같은 교회의 선배들이었다.

내가 다닌 대학보다 더 성적이 높은 대학을 다녔다.

그중에는 전문 경영인도 있고 일찌감치 자기 사업을 하는 이도 있고 대학교수가 된 이도 있다.

하하하!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선택받은 거다.

물밑 작전이 통해서 나에게 낚인 거다.

그래서 지금도 롤러코스터 타듯이 가계부 펼쳐놓고 조마조마하는 거다.


“모여지지를 않아요. 모여지지를.”

푸념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래도 나갈 만큼 들어오는 게 감사하지.”

하고 웃고 만다.

용을 쓴들 효과가 있겠는가?

웃고 말아야지.




도대체 얼마큼의 수입이 있어야 넉넉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가끔 대기업 총수 일가나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뉴스거리가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저 정도 살면 부족할 게 없을 것 같은데 왜 그럴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다 해결되는데 돈이 부족한가?

그런 삶을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갑자기 마이클 샌덜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이 떠오른다.

사실 그 책의 내용은 나도 많이 이야기했던 것들이 있다.

그런데 샌덜은 책을 냈고 나는 말로만 끝냈다.

샌덜은 그 책으로 돈을 벌었고 나는 못 벌었다.

하하하! 어쨌거나 세상이 아무리 황금만능주의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점에서는 그나 나나 공감하고 같은 말을 했다.

그러면 내가 하버드대학교 교수 수준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언젠가 꽤 괜찮은 남자인데 젊었을 때 바람을 핀 적이 있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부인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왜 그러셨냐고 여쭤보니까 그는 자신도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단지 자신에게는 채워지지 않았던 뭔가가 있었다고 했다.

넉넉하지 않았던 거다.


누구는 아예 가진 것이 없고, 욕심도 없으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것도 내가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뭐라 말할 수 없다.

평생 노력해도 아예 가진 것이 없게 되는 상태, 욕심이 없는 상태에 이르지는 못할 것 같다.

무소유에의 도전에는 너끈하게 합격할 줄 아나 본데 그것도 불합격이다.


위에서 보나 아래서 보나 나는 부족함 투성이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그냥 이렇게 살자고 마음먹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에이! 헤드라이트가 나갔다.

그것도 양쪽 다!

아! 정말 줄줄이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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