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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02. 2021

살아온 날이 다 때 묻은 날 뿐이다


일 년에 한 번은 치과에 간다.

스케일링을 하기 위해서다.

나름 신경을 써서 양치를 하고 치간칫솔도 사용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입이 텁텁해지고 이빨 사이에 뭔가 낀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치석이란 놈이 내 눈에 안 보이는 곳만 골라서 착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빨의 감각을 무디게 하고 잇몸에 염증을 만들어 붓게도 하고 피를 내기도 한다.

그놈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치과에 가는 길은 죄를 지어서 어디 끌려가는 기분이 든다.

‘다 큰 어른이 양치를 어떻게 하길래...’

꼭 이런 말을 들을 것 같다.

다른 병원에 비해서 유독 치과가 불편한 것은 남한테 입을 ‘아’하고 크게 벌리고 있는 것이 마치 내 속을 다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술대에 누워 있으면 부끄럽고 창피하다.

얼굴에 천이 덮이고 하얀 불이 켜지면 이제 시작이다.

나도 모르게 두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치석 제거야말로 무척 중요하다.

치아가 건강해야 음식을 잘 씹어 먹을 수 있고 음식을 잘 먹어야 몸이 건강해진다.

20세기 치과 의술의 발전이 인류 수명 연장에 끼친 공로도 엄청나다고 한다.

100년 전 어른들은 치아 관리가 부실하여서 한 번 이빨이 빠지면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처럼 인공 치아를 심어 넣는 임플란트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 빠진 부위를 덧씌우는 틀니 기술도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잇몸으로는 단단한 음식을 씹을 수가 없으니까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하였다.

입에서 제대로 음식물을 분해하지 못한 채 소화기관으로 내려 보내기 때문에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면 건강이 약해지고 수명이 단축된다.

곡기를 끊으면 오래 못 산다는데 먹고 싶어도 씹을 수가 없으니 먹을 수가 없어서 곡기를 끊게 되었다.




치아 관리를 위해서 치석을 제거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우리 입 안에 음식물 찌꺼기들이 침과 뒤섞여 치아 사이에 남아 있는데 이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딱딱하게 굳어진다.

그렇게 돌처럼 굳은 것이 치석이다.

치석이 잇몸을 파고들어가서 각종 잇몸병을 유발시키고 잇몸을 약하게 만들어버리면 그곳에 심겨 있는 치아가 쏙 하고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 치석을 아예 박멸시키려고 칫솔질을 열심히 해도 막을 수가 없다.

치석은 꾸역꾸역 쌓이고 결국 이빨을 누렇게 감싼다.


마치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날들을 보는 것 같다.

착하게 살려고 했고 남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했다.

가훈처럼 정직과 성실을 실천하려 했고 학교 급훈처럼 바른생활을 하려고 했다.

동사무소에 걸린 현판을 보면서 정의사회를 구현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살아온 날이 다 때 묻은 날 뿐이었다.

그 날들이 쌓여서 치석처럼 고집 세고 못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카스트제도가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인도에서는 허리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달리트라고 불리는 불가촉천민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은 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천한 존재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지나온 길을 다른 사람이 밟으면 함께 더러워질까 봐서 그 길을 부지런히 쓸어낸다.

그들은 다른 계급 사람들이 보이면 도망가고 숨어버리기도 한다.

달리트가 아닌 사람들은 그들을 천하다며 접촉하지도 않고 말도 섞지 않는다.

더럽다며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자신들은 매일매일 잘못을 범하고 실수하고 때를 묻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은 때가 쌓여서 치석을 만들고 이빨을 뽑아버리고 생명을 단축시킨다.

작은 때가 나를 고집불통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내 삶을 망가뜨린다.

달리트들처럼 빗자루로 싹 쓸어버리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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